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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세계관, 익숙한 캐릭터… 한국형 판타지 통할까

입력 | 2019-06-04 03:00:00

tvN 드라마 ‘아스달 연대기’
제작비 540억 원 들인 대작, 최초로 상고시대 역사 다뤄
방영 전부터 ‘미드 모방’ 구설… 알아듣기 힘든 대사도 몰입 방해
이국적 풍광 담은 영상미 돋보여




‘아스달 연대기’는 회당 약 30억 원을 들여 9개월간 사전 촬영했다. 컴퓨터그래픽(CG) 작업에는 영화 ‘신과 함께’ 시리즈를 만든 덱스터 스튜디오가 참여했다. 크게 3개 파트로 구성돼 1일부터 ‘예언의 아이들’과 ‘뒤집히는 하늘, 일어나는 땅’이 6회씩 12회로, 하반기에는 ‘아스, 그 모든 전설의 서곡’이 방영된다. 전설 속의 말 칸모르를 모는 은섬(왼쪽)과 새녘족 대칸부대의 수장 타곤. tvN 제공

익숙하면서도 새롭다. “2회까지만 지켜봐 달라”는 제작진의 간곡한 요청(?)처럼, 1일 첫 편이 방영된 tvN 드라마 ‘아스달 연대기’는 방대한 세계관을 천천히 풀어냈다. 답답할 수 있지만 ‘미생’, ‘시그널’, ‘나의 아저씨’에서 보여준 김원석 PD의 잔잔하고 섬세한 연출을 떠올리면 수긍이 간다. 어쨌거나, 약 540억 원을 들인 이 대작 드라마는 7%대 시청률로 출발했다.

“어떤 사료도 없이 창조했다”는 상고시대 세계관은 신선하면서도 어렵다. ‘어스(지구)’에서 따온 태고의 땅 아스에 세워진 고대 도시 아스달에는 군사와 농경을 담당하거나(새녘족) 제례를 주관하고(흰산족), 청동 기술을 보유한(해족) 부족들이 어울려 산다. 아스달과 대흑벽을 경계로 맞닿은 이아르크 지역에는 수렵과 채집을 하는 씨족사회(와한족)가 형성돼 있다.

옛날이야기가 그렇듯, 혈통이라는 소재도 빠질 수 없다. 사람의 모습과 흡사하지만 더 빠르고 힘이 센 뇌안탈은 파란색 피를 흘린다. 사람과 뇌안탈 사이에서 태어난 이그트는 빨간색과 파란색을 섞은 보라색 피를 지녔다. 다양한 인간 군상을 보여주기 위해 이호영 서울대 언어학과 교수의 조언을 받아 음운을 거꾸로 한 뇌안탈어를 창조하는 수고까지 들였다.

하지만 기존의 작품을 떠올리게 한다는 반응도 적지 않다. 일단 ‘비주얼적’으로 그렇다. 새녘족 타곤(장동건)은 HBO 드라마 ‘왕좌의 게임’에 등장한 존 스노의 털옷을 입고 있으며, 그가 앉아 있는 곰왕좌는 ‘철의 왕좌’를 닮았다. 말을 타고 활을 쏘며 뇌안탈을 사냥하는 극악무도한 새녘족은 호전적 유목민 도트라키를, ‘외부 세력’ 와한족은 웨스테로스 대륙과 얼음 장벽을 경계로 사는 야만인 와일들링을 떠올리게 한다. 가혹하지만 ‘왕좌의 게임’의 원작 ‘얼음과 불의 노래’를 패러디한, ‘마늘과 쑥의 노래’라는 풍자적 별명은 이 드라마의 숙명일 수밖에 없다.

자연과 공존하는 와한족이 정복 민족 새녘족을 맞닥뜨렸을 때의 당혹감은 마야 문명을 다룬 ‘아포칼립토’의 정서와 맞닿아 있다. 와한족과 함께 사는 이그트 은섬(송중기)이 ‘말의 후손’ 칸모르에 오르는 장면은 제이크 설리가 커다란 새 이크란을 길들이며 나비족에게 인정받는 ‘아바타’와 묘하게 겹친다. 갈라진 가슴골에 더벅머리 송중기는 7년 전 ‘늑대소년’의 순수함 그대로다.

그럼에도 태고의 땅에서 벌어지는 장대한 서사를 한국적인 대사와 비주얼로 풀어내려는 노력은 신선하다. 경기 오산시에 지은 2만1000m²(약 6350평) 규모의 세트와 브루나이 해외 촬영으로 완성된 이국적이고 색감 짙은 자연 풍광은 국내 드라마 중에서 독보적이라고 할 만하다. 찌르고 잘리는 액션도 살육의 태고시대를 간접 체험하게 한다. 하지만 “한국어에도 자막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지적이 나올 정도로 알아듣기 힘든 대사는 이 드라마가 극복해야 할 디테일이다. 극 초반 은섬의 탄생부터 방대한 세계관을 장황하게 풀어낸 점은 불가피했더라도, ‘선덕여왕’, ‘뿌리 깊은 나무’ 등을 집필한 김영현, 박상연 콤비의 흡인력 있는 전개가 필요하다.
 
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