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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화물선 압류한 美 초강수 행보에 숨겨진 의도는? [청년이 묻고 우아한이 답하다]

입력 | 2019-06-04 14:00:00


Q. 최근 미국은 국제 제재 위반 혐의를 받고 있는 북한 화물선 ‘와이즈 어니스트호’에 대해서 압류조치를 취했습니다. 이번 조치가 가지고 있는 메시지와 북미 협상테이블에서의 역할이 궁금합니다. 또한 세컨더리 보이콧이 적용될지도 궁금합니다.

A.
미국은 제재위반에 대한 처벌로 자산동결과 거래금지 등을 주로 적용해 왔습니다. 그러나 근래 들어 북한에 전략물자를 공급한 중국 단둥훙샹 (Dandong Hongxiang)그룹과 북한에 러시아산 석유제품을 판매한 싱가포르의 벨무어 (Velmur) 사 등의 계좌자금을 몰수 (forfeiture) 하는 등 보다 강경한 조치를 취하며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습니다.

미국 정부에 의해 몰수조치 된 북한 화물선 와이즈 어니스트 호. 동아일보 DB.


북한이 소유한 상선 중에서 두 번째로 큰 배인 와이즈 어니스트호에 대한 압류는 미국의 대북압박이 더욱 강경해졌음을 의미합니다. 북한 선박이 압류된 경우는 전에도 있었지만 미국이 직접, 자국법 위반을 이유로 북한 선박을 압류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물론 그동안 미국과 북한 간의 경제교류가 전무하다시피 해 미국 항구에 기항하는 북한 선박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와이즈 어니스트호 경우 인도네시아 정부가 이미 억류해 놓은 선박을 미 사법당국이 특별히 자국으로의 인도를 요구해 압류한 사례입니다. 이는 2013년 쿠바에서 전투기 등을 포함한 무기를 밀수하다 파나마 당국에 적발된 청천강호의 사례와 대비됩니다. 당시에도 무기 이전을 금지한 유엔 안보리 결의안 위반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듬해 북한이 파나마 당국에 미화 70만 달러의 벌금을 내면서 청천강호는 풀려났고, 미국이 이를 막으려 했다는 정황은 없습니다. 현재 청천강호는 동흥산호로 이름을 바꿔 활동하고 있습니다.

와이즈 어니스트호의 사례는 미국이 북한을 경제적으로 철저히 봉쇄하려고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산 동결이나 자금 몰수에 멈추지 않고 자국법에 기초해 제재대상의 물적 자산을 몰수하는 초강수를 두었습니다. 자금을 몰수당하거나 벌금을 부과받는 경우에는 돈으로 해결하면 되지만 선박 같은 고가의 자산을 몰수당하면 당장 무역활동에 큰 차질이 생깁니다. 특히 뉴욕 남부지검이 2018년 7월, 싱가포르 정상회담 직후 요청했다는 점에서 이번 사례는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교착된 북-미 협상을 재개하기 위한 일회용 카드가 아닌 중장기적 대북압박 전략의 일환으로 보입니다.

이는 북한이 왜 와이즈 어니스트호 압류에 대해 2005년 방코델타아시아 제재 경우처럼 크게 반발하고 있는 배경입니다. 2005년 미국은 김정일 정권의 해외 통치자금을 관리하던 마카오 방코델타아시아를 돈세탁우려대상으로 지정했습니다. 북한은 자금 동결로 상당한 재정적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이 사건은 북한이 2006년 10월 첫 핵실험을 실시한 원인 가운데 하나로 여겨집니다.

2013년 북한 청천강호 운항 경로. 동아일보 DB


북한은 와이즈 어니스트호 송환 여부를 미 정부의 북미협상 진정성을 가늠할 수 있는 리트머스 시험지 정도로 여기고 있습니다. 다른 상선이나 유조선들이 압류된다면 북한의 대외무역은 치명적인 타격을 입게 됩니다. 2006년 김계관 당시 북한 6자 회담 수석대표가 표현한대로 “피가 마르는” 상황을 다시 겪을 수 있습니다. 이번 사건이 미국의 일시적 협상 카드가 아님을 북한도 잘 알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북한은 다시 강경모드로 선회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와이즈 어니스트호의 압류가 북한 내 경제기관에 대한 미국의 직접 제재 강화를 의미한다면 향후 북한과 불법 교역을 하는 제3국의 개인과 기업들에 대한 제재, 즉 2차제재도 강화될 것으로 보입니다. 와이즈 어니스트호 압류에서 드러났듯이 미 정부는 자산 동결이나 벌금 부과를 넘어 자산 몰수도 제재조치의 일환으로 고려할 것으로 보입니다. 현 유엔제재 결의안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던 국가들에게는 자국 기업들에 대한 관리와 감독이 더욱 중요해짐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제재 준수 의무를 회피하는 국가에 대한 처벌문제는 좀 더 복잡합니다. 유엔의 제재조치 준수는 회원국들의 의무이지만 이를 강제할 규정이나 메커니즘이 없습니다. 유일한 방법은 제재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국가들에 대해 안보리가 별도 제재 결의안을 통과시키는 것입니다. 현재 대북제재에 소극적인 대표적인 나라는 중국과 러시아인데 이들은 안보리 결의안에 대해 거부 권한 (veto)을 가진 상임이사국입니다. 자신에 대한 제재안을 통과시킬 가능성이 거의 없는 셈입니다.

이 때문에 미국은 더욱 적극적으로 자국법을 활용한 독자제재를 활용할 것으로 보입니다. 트럼프 행정부의 행정명령 13810호는 북한과 한 번 이상 거래한 개인이나 기업뿐만 아니라 금융, 실물 및 기술 지원 서비스를 제공한 경우에도 강력하게 처벌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제공합니다. 북한과 거래한 기업이나 선박뿐만 아니라 불법 환적 관련 선박이나 기업에 기술적 지원이나 보험서비스를 제공한 기업들도 제재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대북제재 주 담당부서인 미 재무부 해외자산통제실(OFAC)은 제재 위반에 대해 29만5141달러 (3억 5000만 원) 또는 거래액수 두 배의 벌금이 부과될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향후 미 정부가 자산 몰수를 처벌의 일환으로 활용하게 되면 대북제재 위반 대가는 더욱 커지게 될 것입니다.

고명현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