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송평인 칼럼]조국 수석, “괴물은 되지 마라”

입력 | 2019-06-05 03:00:00

조국, 改憲案에서 실력 부족 노출… 수사권 조정도 능력 밖 일로 보여
편파적 사법부 인사에도 책임 커… 무엇보다 ‘촛불정신’ 앞세우며
정적에 가혹하고 민노총에 관대… 평등한 법 집행 허물고 있지 않은지




송평인 논설위원

서울대 법대는 형법 쪽이 유독 약하다. 민법 쪽만 하더라도 곽윤직 교수라는 큰 산이 있었고 그 계보가 양창수 교수(전 대법관), 김재형 교수(현 대법관)로 면면히 이어졌다. 반면 형법 쪽은 유기천 교수가 유신 시절 미국으로 망명해 버린 후 지금까지도 변변한 교수가 없다.

1984년 촉망받던 강구진 교수가 교통사고로 갑자기 사망하지 않았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것이다. 강 교수는 이수성 교수와 연배가 비슷하다. 이 교수는 나중에 서울대 총장과 국무총리를 지냈지만 형법 교수로서는 존재감이 없었다. 그가 강 교수의 빈자리에서 선후대를 잇는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 탓에 서울대에는 단독으로 형법 교과서조차 써본 교수도 하나 없다. 그런 그가 ‘낳은’ 사람 중 하나가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인 조국 교수다.

조 교수가 대학원 시절 쓴 석사논문은 소련 법학자들의 사상을 다루고 있다. 심사위원장은 이 교수였다. 손꼽히는 마당발인 이 교수는 ‘형님, 아우’ 하는 인맥 관리에는 능했지만 소련 법학은 말할 것도 없고 법학 자체에 별 관심이 없었다. 조 수석은 안경환 교수의 권유로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로스쿨로 유학을 떠났다고 했다. 그의 박사논문 심사위원장이 필립 존슨이라는 교수이며 특이하게도 ‘지적 설계(Intellectual Design)’라는 사이비과학 운동의 주도자라는 사실은 밝히지 않았다. 관심이 딴 데 가 있는 ‘구멍들’을 잘도 찾아내서 학위를 받았다.

민정수석이 된 조 교수가 지난해 내놓은 문재인 정부의 헌법 개정안은 욕심이 커 너무 많은 내용을 담으려다 갈피를 못 잡은 학부생의 리포트처럼 낯 뜨거운 수준이었다. 헌법의 헌(憲)은 큰 틀을 의미한다. 큰 틀이 반드시 가져야 하는 골격의 체계성은 찾아보기 힘들었고 헌법 사안과 법률 사안도 구별하지 못해 법률로 규정할 사안을 헌법에 집어넣은 사례도 적지 않았다.

조 수석이 틀을 만든 검경 수사권 조정안에 대해서는 권한이 검찰로 가느냐, 경찰로 가느냐를 떠나 수사 실무를 알기나 하고 만들었는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경찰에 대한 보완수사 요구, 검찰의 2차 수사권 등 핵심 항목에 대해 경찰도 검찰도 일치된 개념을 갖고 있지 못하다. 소재(所在) 수사 지휘 등 세세한 부분을 망라해서 고려하지도 못했다. 이런 법안을 국회가 섣불리 패스트트랙에 올리는 바람에 결정의 순간 앞에서는 이도 저도 못하는 ‘브렉시트’ 꼴이 나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그의 박사논문을 꼼꼼히 읽은 적이 있다. 독일어 표기는 실수가 많았고 독일 문헌을 읽지도 않고 인용했다는 느낌이 드는 곳이 적지 않았다.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은 자기 능력의 80% 정도를 발휘해 할 수 있는 일이다. 개헌도, 검경 수사권 조정도 그의 능력에 부치는 일이다. 젊었을 때부터 자신을 향한 과분한 기대에 부응해 능력에 부치는 일을 해오다 보니 습관이 돼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의 고향 말로 이제 ‘고마하고’ 더 잘할 수 있는 사람에게 넘겨줬으면 한다.

대통령의 행정부 인사권은 기본적으로 재량에 속한다고 보기 때문에 인사검증 실패에는 크게 시비를 걸지 않았다. 다만 국정의 중재자로서 하는 사법부 인사는 다르다. 김명수 대법원장, 그리고 유남석 헌법재판소장과 문형배 이미선 헌법재판관 등 대통령 몫으로 임명된 헌재 구성원이 과거 정권의 편파성을 극복하기는커녕 더 노골적으로 편파적인 구성이 된 데는 교수 시절 입만 열면 정치적 중립성을 강조한 조 수석의 책임이 크다.

조 수석은 파슈카니스 등 소련 법학자들의 사상에 대한 석사논문을 준비하던 중 남한사회주의노동자연맹(사노맹)에 가담했다. 파슈카니스는 공산주의에서는 ‘계획’이 법을 대체한다고 보면서 법학의 괴물이 돼갔다. 지금 애매모호한 ‘촛불정신’이 법을 대체하는 경향이 없지 않다. 정적과 대기업에는 터무니없이 가혹하고 내 편과 민노총에는 터무니없이 관대한 법 적용이 검찰과 법원에 스며들고 있다. 청와대가 무고하게 이영렬을 쫓아내고 거의 탈법적으로 임명한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의 수사와 국제인권법연구회 출신 법무비서관들에 의한 법원의 배후 공작을 통해 이런 일이 이뤄지고 있다는 의심이 든다. 오래전 사노맹 일로 그를 비판할 생각은 없다. 다만 이 한마디는 해주고 싶다. ‘일 못해도 좋으니 괴물은 되지 마라.’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