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동 경제부 차장
금융시장에서 장기 금리가 단기 금리보다 항상 높게 형성되는 건 이런 이유 때문이다. 오랫동안 돈을 맡기는 대신 그만큼 이자를 더 쳐주겠다고 해야 비로소 ‘그래? 그렇다면…’ 하며 고민하는 투자자가 생긴다. 그런데 요즘 금융시장에서는 이런 통념을 뒤엎는 기현상이 관찰되고 있다. 장기 금리가 단기 금리 밑으로 뚝뚝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지난주엔 3년, 5년은 물론이고 20년, 30년짜리 초(超)장기 국고채 금리가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아래로 추락했다.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이자는 적게 받아도 상관없으니 10년이든 20년이든 내 돈을 안전하게만 지켜 달라’는 투자자가 늘었다는 뜻이다.
이런 ‘장단기 금리 역전’은 경제 전망이 아주 나빠졌다는 신호라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다. 왜 그럴까. 우선 역으로 경기 전망이 좋은 경우를 가정해 보자. 그러면 사업이나 투자 기회가 많아지고, 그에 따라 돈에 대한 수요도 늘어난다. 자연히 예금이나 채권 금리도 따라 오를 것으로 기대하게 된다. 반대로 미래를 비관하는 사람이 늘어나면 이미 갖고 있는 돈이라도 잘 지키려는 성향이 강해진다. 경제 성장과 투자가 부진한 만큼, 물가나 금리도 계속 제자리를 맴돌거나 내려갈 가능성이 높다. 이런 상황이 오래 지속될 것으로 본다면 낮은 금리에 돈을 오래 묻어두는 것도 그리 이상한 선택이 아닐 수 있다.
이런 불길한 현상들이 한꺼번에 쏟아지는 이유를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우리 경제와 정부 정책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가 깨졌기 때문이다. 물론 요즘 시장의 불안심리가 일부 과장돼 나타난 측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무작정 이를 과민반응이나 정치 공세로 치부할 일은 아니다. 7년 만의 경상수지 적자 가능성, 반년째 수출 감소, 외국인 주식 매도 등 객관적 지표들이 그 엄연한 근거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대통령은 “경제가 성공으로 가고 있다”고 했지만 시장은 “그 길이 아닐 수 있다”는 경고를 보내고 있다.
유재동 경제부 차장 jarret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