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연극 내한공연의 ‘자막 오퍼레이터’를 아시나요
뮤지컬 ‘라이온 킹’의 자막 오퍼레이터 이호진 씨(왼쪽 사진)와 연극 ‘887’의 부소정 씨가 자막을 점검하는 모습. 클립서비스·LG아트센터 제공
해외 공연 팀이 내한하면 빠지지 않는 이들이 있다. ‘꼭’ 필요한 인원이지만 절대 무대에선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의 노력은 관객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빛을 발한다. 배우가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사이 무대 뒤 콘솔에서 조금도 긴장을 풀지 않는 이들. 바로 ‘자막 오퍼레이터’다.
일반 관객에게 이들의 직업은 낯설다. 흔히들 “자막은 자동으로 나오는 거 아니냐”고 반문한다. 그러나 실은 공연 자막은 영화와 달리 100% 사람이 현장에 띄우는 ‘수작업’이다. 라이브 공연은 언제나 돌발 변수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9일 개막을 앞둔 뮤지컬 ‘썸씽로튼’에 참여하는 여태민 씨는 “공연이 시작되면 귀로 영어를 듣고, 눈으로는 한글 자막에 집중하며 수천 장을 넘겨야 한다”며 “동시통역만큼은 아니라도 타이밍을 조율해야 해 느슨해질 수가 없다”고 말했다. “지방투어를 따라다니며 수십 번 작품을 강제 관람하면 대사, 넘버를 다 외우는 수준이다.”(뮤지컬 ‘라이온 킹’의 이호진 씨)
연극 ‘887’에서 배우인 로베르 르파주의 머리 위로 ‘최루탄의 단어로써 곤봉의 단어로써’라는 시의 구절이 자막으로 나오는 모습. LG아트센터 제공
이들은 뭣보다 대사 타이밍을 맞추는 ‘순발력’을 주요 덕목으로 꼽았다. 이호진 씨는 “웃음을 유발해야 하는 타이밍에 자막이 적절하게 나가지 않으면 큰일”이라고 말했다. 여태민 씨는 “배우가 입을 벌리거나 움직이는 시점 등 아주 작은 특징도 꼼꼼히 노트에 적어 놓는다”고 했다.
그렇게 준비해도 예기치 못한 상황은 벌어진다. 가끔 배우가 즉흥적으로 애드리브를 치거나 대사를 건너뛰기도 한다. 김미희 씨는 “재빨리 자막이 없는 ‘블랭크(검은색 슬라이드)’ 화면을 띄워 자막과 대사가 엇나가는 일을 막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한 손으로는 배우의 동작을 흉내 내고 노래도 따라 하면서 어둠 속에서 홀로 공연을 즐기는 또 다른 배우인 것 같아요.”(김미희)
“‘자막 덕분에 작품 내용을 잘 이해했다’는 후기에 저도 모르게 뿌듯한 마음이 들어요.”(부소정)
김기윤 기자 pe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