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 ‘마른하늘에 날벼락’ 반응… 청년 비정규직 등 노동약자 피해 불 보듯 日처럼 미리 기업과 충분히 대화해야
김광현 논설위원
고령층을 생산현장에서 활용해야 한다는 것은 국가적으로 보나 개인적으로 보나 절실한 문제다. 현재 진행되는 고령화 저출산 속도면 2050년에는 취업자가 전체 인구의 36%에 불과하게 된다. 이들이 모든 물건을 만들고 서비스를 제공해 돈을 벌고 나머지는 이들에 얹혀산다면 나라 경제가 정상적으로 유지되기 어렵다. 멀쩡한 육체와 숙련된 기술, 노동할 의지가 있는데 은퇴 후 20∼30년간을 마냥 쉬거나 생계에 쫓겨 단순노무직이나 길거리 좌판 같은 저소득 일이라도 할 수밖에 없다면 개인적으로도 불행한 일이다.
그래서 우리보다 고령화사회를 먼저 접한 일본은 2013년 정년을 65세로 늘렸고 다시 70세로 늘리는 작업을 하고 있다. 독일도 현재 65세인 정년을 2029년까지 67세로 연장하기로 했다. 미국과 영국은 법적 의무 정년제도 아예 없앴다.
일본이 정년 연장 문제를 비교적 기업과 근로자 간 큰 충돌 없이 정착시킬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정책을 만들 때 정부가 기업의 사정을 충분히 배려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정년 연장을 논의하는 데 있어 채용하고 고용을 유지시키는 주체인 기업이 핵심적인 대화 파트너임은 물론이다. 그런데 홍 부총리의 정년 연장 검토 발표에 기업들은 ‘무슨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소리냐’는 분위기다. 이달 말에 여러 부처가 합동으로 만든 방안을 발표한다고 하는데 지금까지 노사문제, 인사제도 대화 창구인 경총에 연락 한 번 없었다고 한다. 앞으로 정부안이나 국회안을 가지고 형식적인 공청회는 몇 번 거칠지 몰라도 기업은 그냥 정부나 정치권이 정한 대로 하라는 것이나 다름없다. 2013년 정년 60세를 도입할 때도 그랬다.
정년 연장은 정부가 주도적으로 추진하는 것인 만큼 공무원, 공기업이 최우선적인 적용 대상이 될 것이다. 그리고 대기업 은행을 포함해 근사한 직장의 정규직이 가장 큰 혜택을 보게 된다. 이들에게 지금 다니고 있는 좋은 직장을 5년 더 다니게 해 준다는 것만큼 반가운 소식이 있을까 싶다. 하지만 지금 같은 연공서열적 임금체계, 경직된 고용 관행을 유지하면서 정년만 늘려 놓으면 기업 여건은 별도로 하고도 풍선효과처럼 그 피해가 청년층, 비정규직 등 노동시장의 약자에게 돌아간다. 그 충격은 최저임금을 능가할 게 틀림없다.
총선이 1년도 채 안 남은 시점에서 홍 부총리가 정년 65세의 화두를 던진 것에 대해 총선지원용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제기하는 시선도 일부 있다. 정년 연장이 정권 연장의 도구로 사용되면 안 되는 것은 물론이다. 부디 취지가 좋다는 것만 갖고 무리하지 않기를 바란다.
김광현 논설위원 kk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