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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경쟁력 ‘속병’ 든 한국… 환율 오르는데도 수출 찬스 못살려

입력 | 2019-06-06 03:00:00

[위기의 한국경제]4월 경상수지 84개월만에 적자




83개월간 이어져 온 경상수지 흑자 행진이 결국 멈췄다.

한국은행이 5일 발표한 4월 국제수지 잠정치에 따르면 경상수지는 6억6480만 달러 적자로 집계됐다. 유럽 재정위기가 발생한 2012년 4월 이후 84개월 만이다. 상품수지 흑자가 지난해 4월(96억2000만 달러)보다 41% 감소한 56억7000만 달러로 쪼그라든 게 큰 원인이다.

수출 한국에 치명적인 경상수지 적자는 과거에도 몇 차례 있었다. 대부분 글로벌 경제위기나 급격한 환율 변동, 국제유가 급등 같은 강력한 대외 변수가 직접적인 원인이 됐다.

하지만 이번에 찾아온 경상수지 적자는 원화 가치가 오히려 하락 국면이고 유가 흐름도 비교적 안정적인 시기에 발생했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미중 무역분쟁이 장기화할 조짐을 보이는 가운데 반도체 등 수출 주력 산업의 경쟁력이 오랜 기간에 걸쳐 약화된 것이 이례적인 경상수지 적자로 나타난 것이다.

○ ‘수출 한국’에 경상수지 적자는 위기 신호


대외 개방도가 높은 특성 때문에 한국 경제에서 경상수지 적자는 경제위기 국면으로 연결되는 경우가 잦았다. 대표적인 사례가 1997년 외환위기 직전이다. 1980년대 후반 유례없는 호황으로 경상수지 흑자 행진을 벌이던 한국은 1990년대 엔화 가치 하락이 본격화하면서 수출 증가세가 꺾였다. 1995년 4월∼1997년 2월 엔화 대비 원화 가치가 30.3% 오르면서 1996년 1월부터 이듬해 5월까지 17개월 연속 경상수지 적자가 이어졌다. 결국 한국은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사태라는 뼈아픈 시련을 겪어야 했다.

2008년에는 글로벌 금융위기가 세계 경제를 얼어붙게 만들면서 4월부터 경상수지가 5개월 연속 적자를 나타냈다. 글로벌 수요 감소로 수출이 부진했던 데다 국제유가마저 급등하면서 수입이 늘어 적자가 확대됐다. 2012년에도 엔화 약세와 국제유가 급등, 유럽 재정위기 등 대외 요인이 경상수지 적자를 불러왔다.

○ “이번 적자는 내부에서 탈 난 것”

그런데 이번 경상수지 적자는 과거와는 외부 환경이 크게 다르다는 분석이 많다. 최근에는 원-달러 환율이 크게 상승하면서 수출업체의 가격 경쟁력이 높아진 상황인데도 수출에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미중 무역분쟁이 장기화하면서 세계적으로 교역량이 줄어든 영향이 있지만 그보다는 산업 경쟁력 약화에 따른 내부 요인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신세돈 숙명여대 명예교수는 “지금처럼 수출이 계속 감소하거나 경상수지가 적자를 보였을 경우 과거에는 명백한 외부적 충격 요인이 있었지만 지금은 내부에서 탈이 난 것으로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정 업종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산업 구조도 문제로 지적된다. 상품수지는 2015년 반도체 업종이 슈퍼사이클(초장기 호황)에 들어서면서 연간 흑자가 1200억 달러 규모로 불어났지만 이후 계속 감소세를 나타내고 있다. 이준희 영남대 무역학과 교수는 “주력 산업의 회복이 더디게 나타나면 경상수지가 지속적으로 안 좋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 경상수지 적자 만성화 우려


전문가들은 당장 다음 달부터는 경상수지가 다시 흑자로 돌아서겠지만 장기적으로 내수 침체에 따른 ‘불황형 흑자’와 일시적인 적자가 빈발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번 경상수지 적자가 일회성으로 그치는 급성질환이 아니라 만성질환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수출 회복세가 예상보다 더디게 나타나 흑자 규모가 더욱 줄어들 수 있다”며 “경상수지가 흑자로 돌아서더라도 수출보다 수입이 더 줄어서 생기는 불황형 흑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신민기 minki@donga.com·이건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