섣부른 대북식량 지원 결정은 北이 비핵화 압력 견디게 돕는 일 표본 적고, 왜곡 가능성 높은 북한 식량난 통계도 의심해 봐야 核물질 생산 중단과 美곡물지원 연계해 北이 먼저 식량난 自救 노력하게 해야
천영우 객원논설위원·(사)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
다만, 식량 문제 해결의 궁극적 책임은 북한 당국에 있으므로 북한이 먼저 해결 노력을 다하는 것이 순서다. 국제사회와 우리 정부의 몫은 북한 당국의 책임을 대행하는 것이 아니라 북한의 자체적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한 부분을 도와주는 데 있음을 망각하면 안 된다.
먼저 북한이 식량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다른 방법은 없는지부터 따져보자. 가장 손쉬운 방법은 핵무기 원료물질 생산을 중단하는 조건으로 일정 기간 매년 곡물 100만 t을 요구하는 것이다. 핵 동결의 대가로 미국이 제재를 완전히 풀어줄 수는 없어도 식량을 지원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이런 손쉬운 해법이 있음에도 북한이 마다한다면 이미 확보한 핵 무력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고 주민들을 굶기더라도 핵 무력 증강을 계속해 나가겠다는 의미다. 북한이 식량난을 해결하는 대신 핵 물질과 핵무기를 늘리는 선택을 고집한다면 그 결과에 대해 우리 정부가 북한을 대신하여 책임을 지겠다고 굳이 나설 필요가 있을까. 이런 상황에서도 식량 지원을 강행하는 것은 북한의 핵 무력 증강에 지장이 없도록 짐을 덜어주고 제재와 비핵화 압력을 버틸 체력을 보강해주는 결과를 초래할 뿐이다.
북한의 식량 상황에 대한 WFP와 FAO의 평가도 그 신뢰성을 의심해볼 여지가 있다. 북한당국이 제공한 통계와 12개 군 54가구만을 인터뷰한 결과를 토대로 작성한 것이라면 표본이 너무 작고 북한의 의도에 따라 얼마든지 조작이 가능하다. 이들 국제기구는 식량난을 과장하는 데 북한 당국과 이해관계를 공유하고 있고 실제 과장해온 전력도 있다. 북한 식량난이 절박해 보일수록 기부금 모금에 유리하고 인력과 예산을 확보하기가 용이해진다는 점에서 국제원조기구가 조직 이기주의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북한이 국제원조기구에 제출한 식량생산 통계도 맹신할 것이 못 된다. 국제 제재에 장기간 버티는 데 북한에 가장 중요한 것은 최대한의 식량을 비축해두는 것이다. 수출입이 막히고 외화가 바닥나더라도 먹을 양식만 있으면 미국의 핵 포기 압력에 굴복하지 않고 저항을 계속할 수 있다. 식량 부족을 가급적 부풀리는 것이 국제기구의 지원을 받는 데 유리하다는 계산이 작용할 수도 있다.
북한이 의도적으로 식량난을 과장하지 않더라도 2012년 채택한 포전담당책임제도가 통계의 왜곡을 조장하는 측면도 없지 않다. 포전담당제는 사실상 북한의 농지를 사유화한 농업혁명이다. 소출의 일정 비율만 당국에 바치고 나머지는 농민들에게 자율처분권을 허용하면서 농업생산량은 대폭 늘어났다. 그러나 이러한 인센티브제도 아래에서는 생산량을 축소 신고할수록 농민이 더 많은 몫을 챙길 여지가 생긴다. 공적 배급 체제의 역할이 축소되고 시장이 식량 수급의 중심적 기능을 수행하는 상황에서는 시장의 가격 동향이 실제 식량 사정을 반영하는 가장 신뢰성 있는 지표다. 공식 통계상 작년도 곡물생산량이 전년에 비해 12%나 감소했는데도 시장가격이 안정되어 있다면 농민들이 시장에 직접 판매하는 농산물은 오히려 늘어났다는 의미가 아닌가. WFP와 FAO가 장마당의 곡물시세 조사를 하지 않은 이유가 석연치 않다.
천영우 객원논설위원·(사)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