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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연평해전 유족들 초청해놓고… 김정은 사진 테이블에 올려놓은 靑

입력 | 2019-06-07 03:00:00

유족들 “北때문에 가족 잃었는데… 당장 자리 박차고 싶었다” 불만



4일 국가유공자와 보훈 가족을 초청한 오찬 자리에서 청와대 측이 내놓은 브로슈어 사진. 고 한상국 상사 아내 제공


“당장 자리를 박차고 나가고 싶었지만 대통령이 있는 자리라 꾹 참았습니다.”

2002년 제2연평해전에서 전사한 한상국 상사의 아내 김한나 씨는 6일 본보 기자에게 이렇게 말하면서 울먹였다. 김 씨는 이틀 전 문재인 대통령이 현충일을 앞두고 국가 유공자와 보훈 가족을 청와대로 초청한 오찬에 참석했다. 오찬에는 김 씨를 포함해 6·25전쟁 전사자 유족과 천안함 피격 희생자 유족 등 240여 명이 참석했다.

오찬 자리에서 김 씨는 테이블 위에 놓인 브로슈어를 열었다. 브로슈어에는 식사 메뉴판 한 장과 지난해 10월 프란치스코 교황 예방 장면 등을 찍은 문 대통령의 사진 5장이 들어 있었다. 그런데 5장의 사진 중에는 문 대통령과 함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등장하는 사진도 2장이 있었다.

김 씨는 김 위원장 사진을 보는 순간 온갖 생각이 다 들었다고 한다. 그는 “북한 때문에 목숨을 잃은 국가 유공자와 가족들을 불러 놓고 어떻게 이런 사진을 넣어뒀는지 너무 배려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김 씨는 “같은 테이블에 있던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에게 이런 브로슈어를 나눠준 이유를 물어봤지만 아무 대답이 없었다”고 했다.

김 씨는 “사진을 본 뒤 급체해 밥도 제대로 먹지 못했다”며 “이건 정말 아닌 것 같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오찬에 참석한 이성우 천안함 유족회장도 “기분이 좋지 않았다”며 “우리 이야기를 들으려 불러준 건 고맙지만 왜 이런 사진을 올려뒀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2010년 북한의 포격으로 순직한 이상희 하사의 아버지다.

천안함 생존 장병인 전준영 씨는 현충일인 6일 오전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천안함 유족들을 만나 브로슈어에 담긴 김 위원장 사진 관련 얘기를 전해 들었다고 한다.

전 씨는 “현충원에 함께 모인 유족들은 브로슈어 사진 때문에 분개했다”며 “자식 잃은 부모들을 모셔 놓고 뭐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전 씨는 이날 전우들에게 참배한 뒤 정부가 초청한 공식 행사에는 참석하지 않고 자리를 떴다.

구특교 기자 koot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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