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IST ‘혁신 수업’ 현장 가보니
KAIST에서 열린 ‘제조프로세스 혁신’ 수업 참가자들이 레고로 직접 만든 스마트 팩토리를 설명하고 있다. 이 조는 효율과 정확도에서 좋은 점수를 받아 2위를 차지했다. 대전=윤신영 동아사이언스 기자 ashilla@donga.com
5일 오후 5시 10분 대전 KAIST 산업및시스템공학동 1층 로비에서 이런 장면이 펼쳐졌다. 장영재 KAIST 산업및시스템공학과 교수의 ‘제조프로세스 혁신’ 수업의 수강생 34명이 8개 조로 나눠 각자 3주 동안 개발한 ‘스마트팩토리’의 성능을 선보였다.
이 기계에 부여된 임무는 파란색과 흰색의 플라스틱 칩을 AI를 이용해 빠르고 정확히 분류하는 것. 중간에 불량품(점이 찍힌 칩)이 함정처럼 섞여 있는데, 이들은 별도의 검수 과정을 통해 따로 분류해야 한다. 장 교수는 “데이터 수집, 통계 분석, 의사 결정, 불량 검수 등 다양한 기술이 필요한 작업인데 수강생들은 대부분 학부 2학년생으로 아직 이들 기술을 깊이 배우지 않은 상황”이라며 “개별 내용보다 이 과정들이 하나로 통합돼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고자 이런 수업을 기획했다”고 말했다.
가장 특이했던 건 2등을 차지한 손한솔, 김정훈, 조민규, 주혜민 씨가 만든 방식이었다. 비행기의 프로펠러처럼 생긴 구조물이 돌아가는 가운데 칩이 들어가면 불량품은 진행 방향 기준으로 왼쪽으로, 정상품은 오른쪽으로 빠르게 쳐내 2분 10여 초 만에 30개의 칩을 거의 정확히 분류해 냈다. 손한솔 씨는 “식품공장에서 1분에도 수천 개의 식품을 검수하며 불량품을 빠르게 제거하는 공정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말했다. 주혜민 씨는 “굳이 컨베이어벨트 길이가 길지 않더라도 (제품) 분류를 정확히 할 수 있다고 판단해 다양한 아이디어를 적용해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구성했다”며 “덕분에 시간을 크게 단축했다”고 말했다.
학생들에게도 이 수업은 대단히 낯설고 품이 많이 드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하나같이 깊은 인상을 남겼다고 말했다. 정진규 씨는 “한 번도 이런 수업을 받은 적이 없다. 낮밤 없이 시간을 많이 들여야 했지만 조교들 덕분에 프로젝트를 완수할 수 있었다”며 “전체 공정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이 수업은 전 세계 공대가 AI와 3D 프린팅 등 새로운 기술이 보편화된 시대에 대응하기 위해 독창적인 수업에 나서는 최근의 분위기와 무관치 않다. 지식을 가르치는 수업 대신 과제를 내주고, 학생들이 스스로 기계와 AI 등을 통해 구현하게 하겠다는 것이다. 지식은 영상 등을 통해 사전에 혼자 습득한다. 기존 수업을 뒤집어 ‘거꾸로 수업’이라고도 불린다.
유럽 3대 이공계 대학으로 꼽히는 스위스 취리히연방공대(ETH) 기계공학과 역시 이 방식의 수업을 필수과목으로 한다. 리노 구젤라 ETH 전 총장은 “ETH 학생들은 1학년 2학기 때부터 이론수업을 빼고 일단 무언가를 만드는 수업에 참여한다”며 “기계공학과 학생은 팀으로 짜 로봇으로 공을 던져 목표를 맞히는 등의 구체적인 과제를 수행하며 문제 해결과 실패 경험을 쌓는다”고 말했다. 한국에서는 KAIST 기계공학과가 비슷하게 자동차를 트랙에서 움직이는 과제를 운영했다. 서울시립대 건축학부는 3D 프린팅 등 신기술을 이용해 학생들이 다양한 구조물과 패턴을 만들며 새로운 건축의 구조와 물성을 이해하는 과목을 운영한다.
대전=윤신영 동아사이언스 기자 ashill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