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DP서 자신의 커리어를 담은 전시회 여는 패션디자이너 폴 스미스 첫매장의 메모-패션쇼 과정 영상 등 무명시절서 최근까지의 여정 선봬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배움터 디자인박물관에서 5일 만난 패션디자이너 폴 스미스. 자신의 커리어를 다룬 전시 제목 ‘헬로, 마이 네임 이즈 폴 스미스’에 대해 그는 “모든 사람이 나를 알 것이라 생각하지 않기 때문 에 이렇게 붙였다”고 설명했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훤칠한 키의 패션 디자이너 폴 스미스(73)가 어깨에 살포시 손을 얹으며 친근하게 말을 걸었다. 5일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만난 그는 자신의 커리어를 담은 전시 ‘헬로, 마이 네임 이즈 폴 스미스’(8월 25일까지) 개막으로 한국을 찾았다.
“보통 패션 전시는 옷을 보여주거나 브랜드를 홍보하죠. 하지만 제 전시는 ‘폴 스미스’의 성장 과정을 담았어요. 패션보다 인생에 관한 전시입니다.”
“전시장 초입에 1평 남짓한 제 첫 매장 보셨죠? 이 전시는 보잘것없는 상황에서 출발해 노력하며 경력을 일궈 나가는 것, 삶을 향한 적극적 태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전시장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던 시절부터 최근까지의 여정을 보여준다. 돈이 없어 호텔방을 쇼룸으로 사용한 기억, 첫 매장에서 기록한 메모 등을 볼 수 있다. 패션쇼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담은 영상도 있다. 스미스는 “내 커리어의 구체적인 과정을 엿볼 수 있는 아주 실용적인 전시”라고 했다.
독창적 아이디어가 자산인 디자이너가 민낯을 공개하는 게 껄끄럽진 않았을까. 그에게 ‘왜 비법을 공개하느냐’고 물었다.
“실제로 많은 사람이 전시가 굉장히 솔직하다고 말해요. 하지만 사람들이 할 수 없는 한 가지가 있죠. 바로 제 마음속에 들어오는 거죠. 호기심 많고 삐딱하게 보길 좋아하는 제 마음은 저만이 볼 수 있답니다.”
한국에도 전시된 스미스의 책상엔 최신 기기와 오래된 라디오가 함께 놓인,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혼합이 인상적이다. 이 얘기를 건네자 스미스는 웃으며 재킷 안주머니에서 종이와 펜을 꺼냈다.
“재밌는 관찰이네요. 전 여전히 아날로그 드로잉으로 아이디어를 생각해요. 물론 최신 기술도 활용하죠. 그러나 유명한 ‘멀티 스트라이프’도 수작업으로 만들어집니다. 종이 위에 여러 색의 털실을 감아 입체감을 만들고, 그 색들이 서로 부딪치며 아주 정확하고 환상적인 스트라이프가 탄생하죠.”
40년 동안 꾸준히 이어진 한 팬의 독특한 선물도 만날 수 있다. 의자, 스키, 스케이트보드, 닭 인형 등 온갖 물건이 박스도 없이 우표만 붙은 채 그에게 보내졌다고 했다.
“손 글씨가 매번 같아 한 사람이 보낸 거라 추측할 뿐 누가 보냈는지 아직도 몰라요.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는 순수한 우정의 표현이 놀랍고 사랑스럽죠.”
“인내심을 갖고 천천히 무언가를 쌓아 올리는 것. 너무 많은 것들이 너무 빨리 돌아가는 지금에도 전 여전히 그런 것이 좋습니다. 젊은 디자이너에게도 좋은 영감이 되길 바랍니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