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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속성 없는 대화’, 韓日갈등 해결의 걸림돌?…해결 방안은[청년이 묻고 우아한이 답하다]

입력 | 2019-06-07 14:00:00



Q.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에서 열린 ‘일본의 젊은 정치 지도자들의 시각’에 관한 행사에서 미래의 총리 후보로 거론되는 고이즈미 신지로는 한국과 일본의 갈등 해결이 어려운 이유 중 하나로 ‘연속성 없는 대화’를 꼽았습니다. 한국의 정치 구조 특성상 협상 상대가 자주 바뀌는 점을 지적한 것인데요. 그렇다면 비교적 긴 호흡으로 이어지는 듯한 일본 정부와 한국 정부는 구조적으로 어떤 차이가 있으며, 한일문제 협상에 실질적으로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궁금합니다.
- 김해인 연세대학교 철학과 / 지구시스템과학과 3학년 (아산서원 14기)

A. 한일 양국의 갈등이 고조에 달할 때 역대 한일의원연맹 집행부를 중심으로 갈등의 해결책을 모색하기 위한 대화들이 지속되어왔고 정치적 타결로 이어진 경우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이상득 전 국회 부의장, 일본에서는 모리 전 총리가 각각 한일 및 일한 의원연맹 회장을 맡았던 시기 이래로 정치적 네트워크가 갈등 해결에 직접 기여하는 정도가 낮아지고 있습니다. 갈등 해결의 창구이자 대안 모색의 진원지였던 정치적 채널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한일 간 정치적 네트워크의 약화는 세 가지 원인에 기인하고 있습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오른쪽)과 고노 다로 일본 외상이 지난달 23일(현지 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한일 외교장관 회의를 하고 있다. 동아일보 DB


하나는 양국 정치인들의 급격한 세대교체입니다. 일본에서 아베 신조 총리와 한국에서 박근혜 대통령 등 전후 세대가 정권을 잡기 이전까지 한일은 전전의 기억과 경험을 가진 세대들이 네트워크와 소통의 전면에 섰습니다. 이들은 전쟁과 식민지 경험에 대한 ‘부채의식’을 가진 세대들이었습니다. 일본 의원들은 한국의 식민지화에 대해 사죄와 반성의 마음을 가지고 있었고, 한국 의원들은 일본의 발전상에 경외감을 가진 이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전후 세대들이 전면에 나서게 되면서 정치인들 사이에서도 전쟁과 식민지에 대한 부채의식은 급속히 사라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한일의 관계는 더 이상 ‘특수관계’가 아닌 ‘보통국가 간 관계’로 전환하고 있습니다. 소통의 수단에 있어서도 불과 한 세대 전의 정치가들 중에는 일본어에 능통한 한국 의원들이 다수 있었고, 비공식적인 대화의 장에서 일본어 실력을 활용하여 가감없이 솔직한 소통을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들 전전 내지 전중 세대들이 역사의 뒷무대로 사라지면서 한일 간의 소통은 깊이와 폭에서 달라지고 있습니다. 양국 정치인들의 대화가 표면적이고 공식적인 대화에 그치는 경우가 많아진 이유의 하나입니다.

한일 정치인 간의 대화에 단절성이 강화되는 이유의 다른 하나는 양국 정치구조의 상이성에 기인합니다. 단임제 대통령제를 가진 한국에서 대통령의 권한은 아주 강합니다. 그러나 대통령직을 수행하고 난 다음에는 자리에서 물러나는 게 당연하고, 대통령을 보좌했던 정치세력들도 더 이상 힘을 가지지 않게 됩니다. 대통령과 그의 지근거리에 있던 정치인들은 검찰의 조사를 받거나 정치적으로 어려운 입장에 서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반면 내각 책임제를 채택하고 있는 일본의 경우는 총리직을 수행할 때 강한 권한을 가지는 것은 물론이고 총리직에서 물러난 이후에도 국회의원직을 유지하면서 정계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유지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일본은 내각 책임제를 채택해 총리직을 수행할 때 강한 권한을 가지는 것은 물론 총리직에서 물러나도 국회의원직을 유지하며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사진은 아베 신조 일본 총리. 도쿄=AP 뉴시스


따라서 한국의 경우 정권 교체가 일어나거나 다른 대통령이 들어서는 경우 전 정권의 정책이나 네트워크가 유지되는 경우는 아주 적습니다. 일본의 경우는 커다란 변화가 없는 반면 한국의 경우 정권 담당자들이 급격하게 교체되는 경우가 많아 전략적인 대화가 유지되기 어려운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일본에서는 영향력을 가진 사람들이 그대로 있는 데, 한국의 경우 대화 상대가 거의 전멸하다시피 사라지는 경우가 많아서 전략적 대화의 연속성을 가지기 어렵습니다.

정치 경력의 관리 측면에서도 한일은 다릅니다. 일본에는 7, 8선을 넘는 다선 의원들이 아주 많습니다. 도시부 출신 의원들은 몇 명을 제외하곤 정치적으로 오래 생존하기 힘들지만, 지방이나 농촌부 의원들의 경우는 잘 다져진 후원회를 중심으로 대를 이어가며 정치라는 직에 종사하는 경우가 많아 기본적으로 연속성이 강합니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는 3선을 넘어 4, 5선이 되면 이미 당 대표나 대통령직에 도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7선 이상 국회에 봉직하는 경우는 아주 드뭅니다. 특히 도시부 선거의 경우 정치 바람에 크게 영향을 받기 때문에 2선을 넘기기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따라서 다선 의원을 다수 보유한 일본과 다선 의원을 찾기 힘든 한국 사이에 대화의 연속성 및 네트워크의 지속성을 확보하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일 양국 관계의 중요성에 대한 의지만 있다면 정치적 네트워크를 유지하고 대화의 연속성을 가지는 게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국가전략을 보다 넓은 지역과 글로벌 차원에서 이해하는 혜안과 양국 관계의 중요성에 대한 이해도입니다. 의지와 열정이 있으면 언어나 의원 봉직 기간은 그다지 장애물이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박철희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