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는 교열 중/메리 노리스 지음·김영준 옮김/272쪽·1만5500원·마음산책
고대 그리스의 대표 건축물인 파르테논 신전. 메리 노리스는 ‘그리스는 교열 중’ 서문에 이렇게 썼다. “상상력을 자극하고 유쾌한 감각을 선사하고 유한한 생명을 확장하는 그리스의 모든 것을, 호메로스 시대 이전부터 3000년 이상 지속해 온 것들을, 예전엔 낡았지만 지금은 새로운 것들을 찬양하라.”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다행히도 그는 ‘뉴요커’ 교열자라는 천직을 얻었다. 자칫하면 재수 없게(?) 비쳤을 별종 기질은 천재적 작업 능력으로 승화됐고, 입사 16년 차에 ‘오케이어’ 직책을 단다. 원고 전체를 매만지고 오케이 사인을 내리는 자리다. 그의 별명은 ‘콤마퀸’.
‘그리스…’는 그의 두 번째 책이다. 지난해 국내에 출간한 첫 책 ‘뉴욕은 교열 중’은 구두점, 맞춤법, 하이픈에 대한 깨알 같되 진지한 담론으로 호평을 받았다. 이번에는 그의 뮤즈인 그리스와 부대낀 경험담을 기록했다. 알파벳과 신화의 요람이지만 오늘날 유럽의 천덕꾸러기 신세가 된 그리스에 대한 열정을 진하게 담아냈다.
메리 노리스는 1925년에 창간된 ‘뉴요커’에서 40년 넘게 근무하며 원고에 오케이 사인을 내리는 ‘오케이어’ 업무를 맡고 있다. 메리 노리스 홈페이지
첫머리에 그리스 알파벳표가 나오는데, 예사로 넘겨선 안 된다. 책의 상당 부분을 언어에 할애하기 때문이다. 로마자가 세계를 호령하지만 본디 그리스 알파벳이 형님이었다. 저자는 알파벳론부터 시작해 그리스어를 조목조목 해부한다. “Z는 뒷북 같은 느낌이 있다”거나 호메로스의 “회색 눈을 지닌(gray-eyed) 아테나”라는 수식어를 추적하는 대목이 신선하다.
꼬부랑글자가 눈에 익을 즈음이면 여행담이 이어진다. 수십 년간 에게해, 리비아해, 레스보스 등을 누비며 겪은 시트콤 같은 상황에 여러 번 웃게 된다. 자신에게 치근대던 토마토 농부에게 “(진도가) 너무 빨라요”라고 한다는 게 그리스어가 서툴러서 “더 빨리, 더 빨리”라고 했다는 식이다.
그리스 이야기만 하는 건 아니다. 67세 싱글 콤마퀸은 인생 여정도 가감 없이 풀어놓는데, 되돌아보니 모든 대목이 그리스와 맞닿아 있었다. 저자의 두 살 위 오빠는 어린 시절 베이컨이 목에 걸려 세상을 떠났다. 죄책감으로 얼룩진 유년을 보낸 그를 구원한 건 대학에서 만난 신화학 강의였다.
언어, 신화, 문학, 유년, 일, 취향을 폭넓게 다뤄 지루할 틈이 없다. 다소 버거운 그리스어마저 그 옛날 ‘꼬리에 꼬리를 무는 영어’ 시리즈의 추억을 건드린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