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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며칠만 참으니, 게임-SNS 집착 사라졌어요”

입력 | 2019-06-08 03:00:00

스마트폰 중독 청소년 치유 캠프 가보니




3일 오전 전북 무주군 국립청소년인터넷드림마을에서 ‘인터넷·스마트폰 치유 캠프’에 참여한 청소년들이 대학생 멘토들과 집단 상담을 하고 있다. 국립청소년인터넷드림마을 제공

“좋아하는 애를 포기할 수밖에 없죠.”

3일 오전 11시 반 전북 무주군의 국립청소년인터넷드림마을 교육동 1층 강의실. 한 여학생의 또랑또랑한 목소리가 강의실에 울려 퍼졌다. “좋아하는 친구한테 연락이 올 때마다 스마트폰을 쓰고 싶어 죽겠다”는 이 학생은 스마트폰을 쓰지 않기 위해 쿨하게 ‘짝사랑남’을 포기하겠다고 선언했다. 곳곳에서 왁자지껄 웃음이 터져 나왔다.

다른 학생은 공부할 때마다 스마트폰이 옆에 있으면 자꾸 보게 된다고 했다. 이 학생은 “스마트폰 사용 시간을 조절하는 애플리케이션(앱)을 깔아보겠다”고 다짐했다. 혼자 누워 있을 때, 버스를 기다릴 때…. 학생들은 저마다 스마트폰 사용을 억제하기 힘든 순간을 발표했다. 그러면서 그런 순간이 오면 “운동을 한다” “옆 친구랑 이야기를 한다” 등 자신만의 해법을 내놓았다. 이들은 모두 국립청소년인터넷드림마을이 주관하는 ‘인터넷·스마트폰 치유 캠프’에 참여한 학생들이다.

○ “스마트폰 없이도 놀 수 있어요”

여성가족부 산하 국립청소년인터넷드림마을은 인터넷이나 스마트폰 과의존으로 어려움을 겪는 청소년에게 ‘치유 캠프’를 제공한다. 인터넷·스마트폰 ‘과의존 위험군’으로 분류된 만 13∼19세 청소년들은 의존도에 대한 평가를 거쳐 입소한다. 과의존 정도에 따라 1∼4주간 스마트폰을 비롯한 전자기기 없이 생활하게 된다.

갑작스러운 스마트폰 사용 중단은 손 떨림이나 우울증 등 금단증상을 불러오기도 한다. 캠프에 참여한 학생들은 옆 친구들과 활발하게 대화하며 ‘스마트폰 디톡스(해독)’ 과정을 거치고 있었다. 드림마을 관계자는 “캠프 입소 초기에는 매일 보던 휴대전화가 없으니 우울해하는 아이들이 많지만 차츰 적응해간다”고 귀띔했다.

실제 캠프에 참가한 학생들은 “처음 며칠만 참아내면 스마트폰 생각을 잊는다”고 입을 모았다. 김수민(가명·13) 양은 “처음 들어왔을 땐 ‘이거 왜 해?’ 싶었는데, 지금은 스마트폰을 하고 싶은 생각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김 양은 게임 ‘좀비고등학교’에 푹 빠져 매일 9시간씩 스마트폰을 붙잡고 있었다. 김 양의 아버지는 늦은 밤에도 몰래 스마트폰을 하는 것을 보고 스마트폰을 집어던졌다. 김 양은 그날 깨진 스마트폰을 들고 집을 나갔다. 김 양은 담임선생님의 설득에 이 캠프에 참여했다.

캠프에선 상담뿐 아니라 명화 그리기, 체육활동, 역할극 등 스마트폰 대신 할 수 있는 다양한 대안활동을 익힌다. 참가자들은 자연스럽게 스마트폰 이외의 놀거리를 알게 된다. 다른 것에 흥미를 느낀 학생들은 차츰 스마트폰에 의존하려는 충동을 억제하면서 자기통제를 배워 나간다.

게임 ‘배틀그라운드’를 좋아해 밥을 먹으면서도 스마트폰을 놓지 않았다는 박진주(가명·14) 양은 “체육시간에 줄넘기를 한 게 재미있었다”며 “집으로 돌아간 뒤에도 줄넘기를 하면서 스마트폰 중독을 이겨내겠다”고 말했다.

○ 청소년 6명 중 1명은 ‘스마트폰 과의존’

스마트폰 말고는 놀거리가 없는 환경에서 청소년들은 자연스럽게 스마트폰에 몰입한다. 최근 세계보건기구(WHO)가 게임중독을 질병으로 분류한 것을 두고 일각에선 게임중독의 원인은 게임 자체이기보다 외부 환경인 경우가 많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최근 스마트폰 없이는 친구 관계를 맺기도 힘들다. 모든 아이가 소셜미디어를 통해 교류하기 때문이다. 드림마을 선진숙 사업관리부원은 “요즘은 소셜미디어에서 어울리지 않으면 소외돼 아이들이 스마트폰을 놓지 못한다”고 말했다.

페이스북, 트위터, 밴드 등 온갖 소셜미디어를 섭렵했다는 박지윤(가명·14) 양은 “소셜미디어에 내 얘기를 올리면 다른 사람들이 반응해주는 재미에 한 달 중 열흘 동안 학교에 가지 않고 스마트폰에 매달린 적도 있다”고 말했다.

청소년의 스마트폰 과의존은 꾸준히 늘고 있다. 여성가족부의 ‘2019년 인터넷·스마트폰 이용습관 진단조사’에 따르면 전국 초4, 중1, 고1 등 학령 전환기 청소년 128만여 명 중 16%(20만6102명)가 인터넷 또는 스마트폰 ‘과의존 위험군’이다. 과의존 위험군이란 주의사용자군(자기조절에 주의가 필요한 단계)과 위험사용자군(일상생활에 심각한 장애를 겪어 전문기관의 도움이 필요한 수준)을 합친 것이다.

과의존 위험군 비율은 △2017년 14.3% △2018년 15.2% △2019년 16.0%로 증가했다. 특히 저연령화 추세가 심화되고 있다. 초등 4학년의 최근 3년간 과의존 위험군 수는 △2017년 5만335명 △2018년 5만5467명 △2019년 5만6344명으로 늘었다.

○ 부모도 함께 스마트폰 끊어야

스마트폰 치유 캠프는 가장 긴 코스가 한 달이다. 이 기간이 지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까. 치유 캠프가 정말 좋았다고 앞다퉈 말한 학생들도 이 질문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스마트폰 생각이 사라졌다”던 수민 양은 ‘캠프 퇴소 뒤 스마트폰을 끊을 수 있을 것 같으냐’는 질문에 힘없이 ‘아니요’라고 말했다. “이전처럼 똑같이 9시간씩 할 것 같아요. 스마트폰 말고 달리 할 일이 없어요. 학교도 가기 싫고….”

전문가들은 일상으로 복귀한 뒤에도 스마트폰 사용을 줄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조언한다. 특히 부모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 보통 스마트폰에 빠지는 아이들의 부모 역시 생활 속에서 스마트폰을 지나치게 많이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드림마을 심용출 캠프운영부장은 “스마트폰을 아이만 못 쓰게 할 게 아니라 부모가 아이와 함께 쓰지 않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드림마을에서는 치유 캠프에 입소하는 첫날 부모 교육을 실시한다. 자녀가 스마트폰 중독에서 벗어나려면 부모가 일상에서 지켜야 할 원칙들이 있다. △하루에 10분 이상 자녀와 대화하기 △가족 모두 스마트폰을 쓰지 않는 ‘사이버 휴식 시간’ 만들기 △가족 모두 스마트폰 보관함 사용하기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부모 교육에 참석하는 부모는 25% 수준으로 저조하다.

스마트폰이나 게임 중독 문제를 학교에서 교육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을지대 중독재활복지학과 김영호 교수는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은 상태에서 발생하는 중독은 국가의 책임”이라며 “스마트폰과 게임을 포함해 술과 담배 등 청소년 건강을 위협하는 각종 중독 예방 교육을 정규 교과과정에 포함해야 한다”고 말했다.

■ 스마트폰 치유 캠프 신청하려면

국립청소년인터넷드림마을 홈페이지에서 신청하면 캠프에 참여할 수 있다. 참가비는 참여 기간에 따라 5만∼15만 원이다. 차상위계층 이하 및 한부모 가정 등 취약계층 청소년은 증빙서류를 내면 전액 무료다.

무주=사지원 기자 4g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