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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년 만에 4강 진출 신화 이끈 ‘흙수저’ 정정용 감독의 팔색조 전술

입력 | 2019-06-09 16:36:00

U-20 축구대표팀의 사령탑 정정용 감독 (대한축구협회 제공)


“제가 아니라 이재익(강원)을 교체하신 것은 의외였습니다. 감독님은 ‘제갈용(제갈공명+정정용)’입니다.”

9일 세네갈과의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 월드컵 8강에서 최고의 활약을 펼친 수비수 이지솔(대전)은 공을 사령탑인 정정용 감독(50)에게 돌렸다.

한국이 1-2로 끌려가던 후반 35분에 정 감독은 전술 변화를 시도했다. 스리백 수비수 중 한명을 빼고 발 빠른 공격수 엄원상(광주)을 투입해 공격 강화를 꾀한 것이다.

문제는 스리백 왼쪽의 이재익과 오른쪽의 이지솔 중 누구를 교체하느냐는 것. 일본과의 16강에서는 이지솔이 엄원상과 교체됐다. 하지만 세네갈전에서 정 감독은 정반대의 선택을 했다. 이지솔을 그라운드에 남겨두고 이재익을 엄원상과 교체했고, 이 작전은 적중했다. 이지솔은 후반 추가시간(후반 53분) 극적인 헤딩슛으로 2-2 동점을 만드는 골을 터뜨렸다. 이지솔은 “제 투지를 감독님이 좋게 보신 것 같다”고 말했다.

축구계 ‘흙수저’로 통하는 정 감독은 절묘한 용병술을 통해 한국의 4강을 이끌었다. 경일대를 나와 실업팀 이랜드 푸마 등에서 뛴 그는 현역 시절 연령별 국가대표 경력이 없다. 부상 등으로 현역 생활을 마감한 그는 2006년부터 대한축구협회 전임지도자로 활동하며 유소년 육성에 집중했다. 협회 관계자는 “정 감독은 현 20세 이하 대표팀 선수들이 18세일 때부터 3년간 지도했다. 선수 특성을 세밀하게 파악하고 있기 때문에 장점이 극대화될 수 있는 타이밍에 투입하는 능력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세네갈전 연장전에서 한국이 터뜨린 골도 정 감독의 용병술에서 나왔다. 이날 정 감독은 주전 공격수 조영욱(FC서울)을 선발로 투입하지 않았다. 대신 세네갈의 수비 집중력이 흐트러진 후반에 활동량이 많은 조영욱을 투입했고, 조영욱은 연장 전반 6분 이강인(발렌시아)의 환상적인 패스를 받아 한국의 세 번째 골을 터뜨렸다. 한준희 KBS 해설위원은 “조영욱의 체력을 아껴뒀다가 후반에 활용한 점 등 정 감독은 자신이 보유한 선수들의 몸 상태와 장단점을 정확히 파악해 전술적으로 활용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평가했다.

경기 상황에 따라 전형을 바꾸는 정 감독의 ‘팔색조 전술’도 큰 효과를 보고 있다. 대표팀은 전반전에는 수비에 집중한 스리백 전형(양쪽 측면 미드필더 수비 가담 시 최종 수비수 5명)으로 상대 공격을 막아낸다. 이후 후반전에 발 빠른 공격수의 투입과 함께 포백 전형(최종 수비수 4명)으로 변경해 반전을 이뤄내고 있다. 이번 대회 한국이 터뜨린 7골 가운데 6골이 후반(연장전 포함)에 나왔다. 정 감독은 “우리 선수들과 상대의 실력이 비슷하거나, 상대가 우리보다 좋다고 판단될 때는 여러 가지 전략, 전술을 갖고 있어야 이길 수 있다”고 말했다.

오랫동안 유소년 선수들을 지도해 온 정 감독은 어린 선수들의 심리를 다스리는 데 능하다. 평소 20세 이하 대표팀은 훈련 전에 신나는 음악을 틀어 놓고 워밍업을 하는 등 자유로운 분위기다. 하지만 결정적 순간에 정 감독은 ‘당근과 채찍’을 오가는 말로 선수들의 투지를 일깨운다. 조별리그 통과의 분수령이었던 남아프리카공화국과의 2차전 때는 “너희 (조별리그) 3경기만 하고 돌아갈래?”라는 말로 선수들을 자극해 1-0 승리를 이끌어냈다. 세네갈과의 8강을 앞두고서는 부담을 덜어주는데 집중했다. 정 감독은 “선수들에게 ‘솔직히 한일전(16강)보다는 (세네갈이) 덜 부담스럽지 않느냐. 멋지게 한판 놀고 나와라’라고 얘기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꾸역꾸역 앞으로 가는, 쉽게지지 않는 팀이다. 선수들이 한 약속(우승)을 지키도록 하기 위해 끝까지 도전하겠다”고 말했다.

정윤철 기자 trigg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