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성공 거론 대신 미래 불안 경고 쏟아져 세계경제 틀 바뀌지만 우린 아직 내부 공방만
고기정 경제부장
요즘 이런 찬사가 잘 들리지 않는다. 지난달 열린 동아국제금융포럼에서 세계적 석학인 스티븐 로치 예일대 교수는 “한국의 상황이 상당히 걱정스럽다” “장기적인 경제 전망에도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예견했던 앤디 셰 전 모건스탠리 이코노미스트 등 다른 참석자도 비슷한 뉘앙스였다. 인사치레 찬사조차 없이 강연 내내 혁신을 요구했다.
한국에 대한 외부 평가가 인색해진 건 우리가 갑자기 열등생이나 문제아가 됐기 때문이 아니다. 세계 질서의 큰 틀이 바뀌면서 과거와는 다른 실력과 적응을 요구받고 있어서다. 지금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경제 환경은 1980년대 미국 레이건 행정부 때 시작됐다. 유례없는 장기 저금리 시대가 막을 올렸고, 세계화 조류 속에서 상품 교역과 자본의 이동이 급격히 증가했다. 수출, 그중에서도 중화학제품 수출을 추진했던 한국에는 이보다 좋은 환경이 있을 수 없었다. 물론 외환위기라는 시련이 있었지만 그 충격을 극복할 수 있었던 비결도 수출이었다.
셰일오일은 지난해 미국을 75년 만에 석유 순수출국으로 바꿔 놨다. 미국이 에너지 자립을 넘어서 에너지 패권을 쥐게 되면 지금처럼 막대한 출혈을 감내하면서까지 팍스아메리카나(미국 주도의 세계평화)에 집착할 이유가 줄어든다. 팍스아메리카나는 미국의 에너지 확보 전략과 연계돼 있기 때문이다. 지정학 전략가 피터 자이한은 저서 ‘셰일혁명과 미국 없는 세계’에서 아시아 국가들의 전망을 소개하며 “경제적으로, 인구 구조적으로, 군사적으로 가장 큰 걱정거리를 안고 있는 나라는 한국이다. … 한국이 움찔할 만한 이러한 예상조차도 북한에서 아무 문제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서 하는 추측이다”라고 했다.
대통령은 “총체적으로 본다면 우리 경제는 성공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했지만 그 총체적인 상황은 상당히 비관적이다. 새 질서가 요구하는 실력은 이념적 연대가 희미해지는 세계에서 주변국과 외교를 더 잘하고, 신산업을 잘 키워 교역 축소에 대응하는 길뿐이다. 총선이 가까워서인지 요즘 들어 신산업 피해자 공방이 벌어지는 걸 보면, 답을 알지만 선택하지 않는 모순이 느껴진다. 한때 ‘관(官)은 치(治)하기 위해 존재한다’고 했던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의 말이다. “기업인들한테 ‘당신들 하고 싶은 대로 뭐든지 다 해보라’고 하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 해도 성공할 수 있을지 불확실하다.”
고기정 경제부장 ko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