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정구의 역사는 길다. 1923년 6월 동아일보는 ‘전국여자연식정구대회’를 개최했는데 당시로선 여성들만의 운동대회는 파격을 넘는 혁신적 발상이었다. 댕기 머리를 한 여학생들이 무명치마를 입고 코트 위를 뛰어다니는 것을 못마땅해하는 여론이 높아서 ‘가족과 대회 임원 외 남성은 입장할 수 없다’는 조건을 달고 겨우 대회를 열었다. 경기가 열리자 경성 인구(25만 명)의 10%가 넘는 3만 명의 관중이 몰렸다. 초대받지 못한 남성들은 학교 운동장이 내려다보이는 나무 위에 올라가 관전을 했다. 이 대회는 지난달 경북 문경시에서 열린 제97회 동아일보기 전국정구대회까지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단일 종목 대회로는 국내에서 가장 역사가 오래됐다.
▷‘100세 시대’가 열리며 정구를 즐기는 장·노년층이 늘고 있다. 정구는 테니스에 비해 라켓은 30%가량 가볍고(250g), 공 무게도 30g으로 절반이 채 안 돼 운동량에 비해 부상 위험이 적다. 대한정구협회에 생활체육동호인으로 등록한 이들 중 80대 선수가 122명이며 90대도 9명에 이른다. 동아일보기대회를 13년 연속 유치한 문경시는 정구 동호인이 400∼500명에 달한다. 폐광 이후 침체됐던 지역 경제에도 도움이 됐다. 매년 3만 명 이상이 대회 출전과 전지훈련 등으로 문경을 찾은 덕분이다. 정구는 1994년 아시아경기에서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이래 한국의 대표적 효자 종목이다. 2014년 인천 아시아경기에서 금메달 7개를 독식하는 등 역대 대회에서 전체 금메달 45개 가운데 26개를 쓸어 담았다.
▷대한정구협회는 이런 흐름에 부응하려고 올 3월 종목 이름을 정구에서 ‘소프트 테니스’로 바꿨다. 동아일보가 근 한 세기 전 여성의 사회적 지위 상승을 내다보고 시작한 정구대회가 일제강점기에 국민에게 위안을 줬듯이 새 이름을 얻은 정구가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는 스포츠로 널리 확산되기를 기대해 본다.
전성철 논설위원 daw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