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 그후 1년
지난해 6월 12일 싱가포르 센토사섬 카펠라호텔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왼쪽)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공동성명에 서명을 하고 행사장을 나서고 있다.
12일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해 싱가포르에서 역사적인 첫 회담을 가진 지 1주년이 되는 날이다. 당시 두 정상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에 합의하며 한껏 기대감을 높였으나 올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다시 만나선 진전을 보지 못하고 대화 침체기에 들어선 상황이다. 하지만 18일부터 재선 운동에 돌입하는 트럼프 대통령과 이런 상황을 이용하려는 김 위원장의 수 싸움이 본격화되면서 ‘북핵 2라운드’가 시작됐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 ‘완전한 비핵화’ 정의에도 합의 못 한 北-美 지난해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북-미 정상은 완전한 비핵화란 원론적 합의만 공동성명에 담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비핵화 프로세스가 20% 정도 진행되면 불가역적인 순간이 올 것”이라며 “이 지점에서 대북 경제 제재를 해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 북-미 관계는 그야말로 롤러코스터였다. 9월 평양 공동선언 이후 북-미 비핵화 대화가 촉진될 것으로 예상됐으나 미 국무부가 11월 7일 북-미 고위급 회담 연기를 발표하며 위기를 맞았다. 김 위원장은 당초 예상됐던 지난해 말 서울 답방을 건너뛰고 올해 신년사에서 “새로운 길을 모색할 수 있다”며 압박했다. 이후 1월 18일 김영철 당시 통일전선부장이 백악관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면담하며 양 정상의 재회 밑그림을 그렸지만 스몰딜을 원한 북한과 빅딜을 강조한 미국이 하노이에서 ‘북핵 민낯’만 확인한 채 대화 정체가 이어지고 있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비핵화의 첫 단추격인 비핵화에 대한 개념, 북핵의 최종 상태를 확인하지 않고 그간 대화만 이어져 결정적 성과를 내기 어려웠던 것”이라고 진단했다.
비핵화 방법론에 대한 극심한 견해차도 대화의 장애물이다. 북한은 기본적인 신뢰관계를 확인한 다음 단계적 합의와 이행을 선호하는 반면 미국은 포괄적 합의 이후 단계적 동시적 해법을 고수하고 있다. 여기에 북한은 제재 완화를 미국의 대북 신뢰 조치로 보는 반면 미국은 제재를 비핵화 관철을 위한 수단으로 보고 있다.
○ 북핵에 ‘美대선 변수’ 본격화 트럼프 대통령은 18일(현지 시간) 플로리다주 올랜도의 2만 석 규모의 암웨이센터에서 재선 도전 출정식을 갖는다. 민주당도 26, 27일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에서 대선 후보 첫 TV토론회를 연다. ‘북핵 노딜’은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에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은 내년 대선 전까지는 미 본토를 겨냥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등과 같은 북한의 극단적인 추가 도발을 막는 상황 관리에 주력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하지만 김 위원장이 이를 파고들면서 또 다른 변수를 만들어낼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내년까지 지금의 북핵 관리 모드를 유지만 하기엔 남은 기간이 길고, 그동안 김 위원장이 이런 상황을 이용하려 할 수 있다. 이런 북핵 불확실성을 제거하기 위해 트럼프 대통령이 해결에 나설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대선 전까지 비핵화 대화가 수면 아래에 있다가도 트럼프에 대한 지지율 추이에 따라 갑자기 나올 수 있다는 말이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여기에 북유럽 순방에 나선 문재인 대통령이 12일 오슬로 포럼 연설에서 북한을 유인할 수 있는 제안을 내놓고, 북한이 이에 남북 원포인트 정상회담이나 특사 수용으로 화답할 경우 비핵화 시계가 다시 돌아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에 대해 김연철 통일부 장관은 9일 한 방송 인터뷰에서 “(이달 말) 한미 정상회담 전에 남북 정상회담을 바라지만 낙관을 하기엔 상황이 녹록지 않다”고 했다.
황인찬 hic@donga.com·이지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