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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으로 간 거창국제연극제 고사 위기

입력 | 2019-06-11 03:00:00

거창군-집행위 약정금 분쟁으로 올해는 예산 없어 연극제 못 열듯
집행위, 거창군과 합의 의사 밝혀… 막판에 극적타결 여지 남겨 주목




경남 거창국제연극제 공연 장면. 대한민국 대표 여름 연극제인 이 행사가 고사 위기에 놓였다. 거창군 제공

‘아시아의 아비뇽’으로 불리던 소중한 문화자산인 거창국제연극제(KIFT)가 죽어가고 있다.

경남 거창군(군수 구인모)과 30년간 이 연극을 주관해 온 거창국제연극제집행위원회(위원장 이종일 극단 입체 대표)의 분쟁 탓이다. 올해 연극제는 열리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집행위는 돈이 없고, 거창군에는 개최권(상표권)이 없는 탓이다. 그동안 반쪽 행사는 있었지만 연극제를 열지 못한 경우는 없었다.

집행위는 최근 18억6983만2000원을 지급하라며 거창군을 상대로 약정금 청구소송을 서울중앙지법에 냈다. 소송은 법무법인 태평양에 맡겼다. 거창군도 변호사를 선임해 맞대응할 계획이어서 상당 기간 법정 다툼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비록 소송으로 번졌지만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KIFT 정상화는 시간문제처럼 보였다. 거창군과 집행위는 지난해 12월 24일 ‘양측이 선임한 전문평가팀 감정가의 산술평균 금액을 거창군이 집행위에 지급하고, 연극제 관련 모든 권한은 거창군이 갖는다’고 약속했다. 이 ‘묘책’이 실행되면 올해 연극제는 거창군 주도로 개최한다는 구상이었다.

그러나 전문평가팀의 감정가가 공개된 올 2월 말부터 거창군 태도가 돌변했다. 거창군이 선임한 평가팀은 연극제의 인지도와 문화적 가치 등을 종합적으로 따져 11억261만3000원, 집행위 평가팀은 26억3705만1000원을 산출했다. 거창군은 “양측 금액의 차이가 현저하고, 객관적 데이터에도 오류가 있다”며 재감정을 주장했다. 집행위는 “평가 자료는 거창군이 생산한 통계를 활용했다. 자신들이 선임한 평가팀마저 불신하는 상황에서 재감정은 의미가 없다”고 반박했다. 집행위 관계자는 “감정평가서와 함께 평가에 참여한 전문가들도 공개된다”고 설명했다. 산출과정에 오류나 인위적 오염 가능성이 극히 희박하다는 주장이다.

당초 지급 기일은 계약일로부터 6개월 이내였다. 그러나 거창군이 여론 등을 의식해 불복함에 따라 집행위는 소송 카드를 빼들었다. 소송가액은 두 감정팀의 산술평균액이다.

판단은 법원 몫이다. 거창군 주장대로 전문평가팀의 기초 자료에 결정적인 문제가 있는지, 그 정도가 계약의 무효에 이를 만큼 중대한지 등을 따져야 한다. 자유의사에 따라 맺었던 계약을 파기한 거창군의 ‘신의성실 원칙 위배’ 여부도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양측은 계약 당시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승복하고, 만약 어기면 거액의 위약금을 물겠다’는 데 합의했기 때문이다. 계약은 거창군이 주도했고 집행위가 ‘우월적 지위’였다고 보기는 어렵다.

집행위는 31회 연극제를 7월 26일부터 8월 11일까지 ‘자연의 소리, 연극의 바람’을 슬로건으로 개최하려다 사실상 포기한 상태다. 이 위원장은 10일 “집행위 단독으로 연극제를 열 수는 없다. 연속성 유지를 위해 거창군이 특단의 조치를 해 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거창지역 시민사회단체들은 연극제 상표권 관련 계약이 정당하지 않으므로 원천무효화하고 관련자를 엄벌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10여 개 단체는 7일 거창군청 현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집행위에 대한 비난과 함께 “근거도 없고 투명하지도 않은 계약 체결의 배경, 계약 내용을 밝히고 관련자를 처벌하라”고 촉구했다.

집행위는 “소송 중이라도 거창군과 ‘합의’ 의사가 있다. 10억 원이 넘는 누적부채를 정리한 뒤 남는 금액은 모두 거창의 문화발전을 위해 사용하겠다”고 밝혔다. 극적 타결의 여지를 남긴 셈이다. 대안과 퇴로 마련이 쉽지 않은 거창군의 고민이 커지게 됐다.

강정훈 기자 manma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