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구한 날 국수로 끼니를 때우던 시절이 있었다. 6·25전쟁 후 미국의 원조 물자로 들어온 밀가루는 우리 식탁의 중요한 식재료였다. 동네마다 ‘제면소(製麵所)’라고 불리던 영세 국수공장이 있었다. 공장 앞 빈터에서 기계로 막 뽑은 국수 다발을 얇은 대나무에 얹어 말리는 풍경은 흔한 일상이었다. 골목에서 놀던 아이들은 배가 고프면 땅에 떨어진 국수 가락을 주워 먹거나 아예 주인 몰래 다발을 끊어 먹기도 했다. 정부의 혼·분식 장려 정책으로 국수 면발은 가정으로, 학교로, 동네 분식집으로 길게 이어졌다. 라면이 귀했던 시절에는 라면 한 봉지에 국수 한 다발을 함께 넣어 끓여먹기도 했다. 이제 동네에서 국수 뽑는 공장을 보기가 어려워졌다. 게다가 미세먼지가 일상이 된 요즘은 노천에서 국수 말리는 모습은 빛바랜 사진 속 장면일 뿐이다. 국수 다발마다 우리네 인생사, 가족사가 면발처럼 길게 이어져 있다.
글·사진=유동현 인천시립박물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