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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용한의 전쟁史]〈61〉마녀사냥과 영웅

입력 | 2019-06-11 03:00:00


영국 몽고메리 원수가 추진한 ‘마켓가든 작전’은 영국과 미국의 최정예 공수부대가 모두 투입된 사상 최대 규모의 공수작전이었다. 운하가 많고 길이 좁은 네덜란드의 주요 교량을 공수부대를 투입해 점거한다. 그 다음 기갑부대를 앞세운 지상군이 진군해 단숨에 네덜란드를 가로질러 독일로 진입하는 구상이었다.

상상력 넘치는 구상이었지만 게임에서도 불가능할 것 같은 이 작전은 비극으로 끝났다. 특히 선봉에 섰던 영국 제1공수사단은 독일군에 포위돼 궤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었다.

가장 큰 책임이 있는 몽고메리는 책임에서 벗어났다. 1사단장 로이 어퀴하트는 공수부대 경력이 전혀 없는 지휘관이었다. 하지만 의욕적이고 훌륭한 장군이었는데, 책임을 뒤집어썼다. 폴란드 공수부대장 소사보프스키는 마녀사냥을 당했다. 작전의 무리함을 예지했고, 비극이 발생하자 부대원의 절반을 희생시켜 1사단을 구출했지만 비난만 받고 강제 전역했다.

이 작전을 다룬 영화 ‘머나먼 다리’는 어퀴하트 역을 항상 영웅적인 역할을 맡는 숀 코너리에게, 소사보프스키 역은 진 해크먼에게 맡겨 이들이 무죄임을 간접적으로 암시했다.

누군가에게 책임을 뒤집어씌우는 마녀사냥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행해진다. 억울해도 지휘관은 책임을 져야 하는 자리라는 점에서 마녀사냥은 리더의 숙명과도 같다. 그러나 옹졸한 리더는 자기 책임을 감추기 위해 영웅을 마녀로 둔갑시키는 일도 곧잘 저지른다. 더 심각한 잘못은 마녀사냥으로 패배에 대한 원인 분석, 대책까지 덮어 버리는 경우다.

우리 역사에서 종종 그런 일이 벌어졌다. 병자호란 중 의주성 함락 같은 비극이 발생했을 때 수비대장에게 죄를 뒤집어씌우고, 드러난 문제와 개선책까지 덮어 버렸다. 그러다가 다음에 같은 비극이 또 발생하면? 마녀사냥을 한 번 더 하면 된다. 마녀사냥은 다음에 영웅이 탄생할 수 있는 여지까지 원천봉쇄한다. 그래서 요즘 영웅이 없는지도 모른다.
 
임용한 역사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