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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우경임]강사법이 하버드대에서 똑같이 시행된다면

입력 | 2019-06-11 03:00:00


우경임 논설위원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의 강의 영상을 다시 찾아봤다. A대학 교수로부터 ‘하버드대에 강사법을 적용하면 어떻게 되겠냐’는 질문을 받고 나서다. 웅장한 규모의 계단식 강의실에 수강생 수백 명이 빼곡히 앉아 있고, 샌델 교수는 지휘를 하듯 그들의 질문을 조율했다.

한국으로 옮긴 하버드대가 이 강의를 유지한다면 한 해 1조4000억 원을 나눠 주는 재정지원사업에서 탈락할 것이다. 총 강좌 수, 강의 규모, 강사 담당학점 등 평가지표마다 낙제점이다. 이를 피하려면 강의를 쪼개 강의 수를 늘려 강사에게 맡겨야 한다.

하버드대 산하 ‘버크먼 클라인센터’는 기술 발달로 바뀔 미래사회를 예측하고, 필요한 규범을 연구한다. 주제마다 정보기술(IT) 기업 전문가나 타 대학 교수들과 협업이 이뤄진다. 강사법은 겸임·초빙 교수를 공개 채용하도록 했다. 쟁쟁한 전문가들이 채용시험에 응할 리 없으니 버크먼센터는 존폐 위기에 놓일 것이다.

교육부가 하버드대도 부실 대학으로 만드는 ‘슈퍼 규제’를 내놓은 이유가 있다. 강사법이 강사해고법이 될 판이기 때문이다. 대학 역시 강사 채용을 기피하는 사정이 있다. 그저 선한 정책을 반대하는 악한 행위자라서가 아니다. 생존 본능에 가깝다. 3년 안에 학령인구 급감 쇼크가 덮친다. 인공지능(AI) 시대에는 상위 1% 인재가 머신러닝 등을 활용해 수백 명을 가르치는 게 낫다. “구조조정이 초읽기인 상황”이라고 했다.

‘보따리 장사’로 불리던 강사의 신분 보장과 처우 개선, 강사법의 핵심은 이 두 가지다. 대학들이 4대보험 등 처우 개선으로 늘어나는 재정 부담을 들어 반발하지만 깊은 속내는 다르다. 신분 보장이 더 부담스럽다. 강사가 대학 강의 절반을 차지할 만큼 수요가 넘쳤던 것은 비용도 덜 들지만 고용이 유연해서였다. 대학은 재임용 절차 3년 보장을 ‘3년 임용’이 아닌 ‘평생 임용’으로 해석한다. 강사법 시행으로 강사가 교수처럼 교원의 지위를 얻게 되는데 해고가 가능하겠느냐고 반문한다. 전공 수요에 따라 강의를 개설하거나 폐쇄하는 일도 어려워질 것이다.

대학강사제도개선협의회의 강사실태조사 자료를 보면, 2017년 평균 강의료가 시간당 5만8400원이었다. 전임교원의 5분의 1 수준이라고 한다. 얼마나 열악한지 미국과 비교해 보면 금방 안다. 직장평가사이트인 ‘글래스도어’에 따르면 미 대학 강사(Lecturer), 조교수(Assistant Professor), 교수(Professor)의 평균 연봉은 각각 5만3425달러, 7만2172달러, 9만4352달러다. 연봉 격차가 단계마다 2만 달러 수준이다. 그런데 강사법은 ‘정규직’ 교수와 ‘비정규직’ 강사 간 이런 차별적인 구조를 바꾸기보다 강사들을 기득권 구조에 편입시킬 뿐이다. 대학은 갈수록 강사 고용을 꺼릴 것이고 새로 배출되는 청년 박사만 희생될 가능성이 높다.

오랜 산통을 겪은 강사법 시행을 되돌릴 수는 없다. 그렇다고 교육부 안대로 시행되면 원래 취지 달성이 어렵다. 대학들은 학교마다, 학과마다 강사 수요나 쓰임이 다른 사정을 살펴봐 달라고 한다. 교육부가 강사법을 준수했는지 평가할 때 획일적인 막대자 대신 유연한 줄자를 들이대야 그나마 대학에 던진 시한폭탄이 되지 않을 것이다.
 
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