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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 이야기]국방부는 北미사일 한달째 ‘분석중’

입력 | 2019-06-11 03:00:00


북한이 5월 9일 발사해 이튿날인 10일 공개한 ‘북한판 이스칸데르’ 미사일의 발사 모습. 사진 출처 노동신문

손효주 정치부 기자

“하루 이틀이면 기초 분석은 다 끝난다.”

북한의 미사일 도발이 한창이던 2014∼2017년, 군 내부에서 미사일 정보 분석에 관여한 이들의 답변은 대체로 이랬다. 북한이 미사일을 쏘면 군은 비행 궤적 등의 정보를 토대로 초기 분석을 신속하게 마친다. 이후 미군이 수집한 정보를 더해 ‘미사일 퍼즐’을 완성한다. 군 관계자는 “미사일 종류에 따라 시간이 더 걸릴 순 있지만 탄도미사일인지를 가리느라 한 달이 넘게 걸린 적은 없었다”고 했다.

북한이 ‘북한판 이스칸데르’를 쏜 지 한 달이 넘었다. 10일 현재도 국방부는 “분석 중”이라는 입장이다. 최근 북한 도발 국면에선 전례를 찾기 힘든 일이다. 군은 그간 대북 정보력이 평가절하되는 것을 막고 한미 군 당국의 빈틈없는 공조를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발사 직후나 다음 날 큰 틀의 분석 결과를 발표해왔다.

군 당국자는 “스커드 등 익숙한 미사일이면 금방 분석이 되지만 이번엔 신형 아니냐”고 했다. ‘특수 상황’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 해명을 반박할 사례는 많다. 북한의 2014년 8월 신형 미사일 도발이 대표적이다. 발사 당일 군 당국은 이를 300mm 방사포로 분석했다가 다음 날 ‘신형 단거리 탄도미사일’로 수정했다. 북한이 노동신문 등을 통해 발사체 사진을 ‘셀프 공개’하며 정확한 분석을 위한 핵심 자료를 제공했던 것이다.

이번 상황은 2014년 8월과 비슷하다. 북한은 ‘북한판 이스칸데르’ 발사 다음 날 사진을 공개했다. 현역 장교 A 씨는 “결정적 증거물이 나왔는데도 분석 중이라는 건 정치적 이유 외엔 설명할 길이 없다. ‘아직도 분석 중’이라는 말을 믿는 군인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비핵화 협상 국면에서 국방부는 군의 역할을 “한미 양국의 외교적 노력을 뒷받침하는 것”이라고 강조해왔다. 외교통상부 2차관을 지낸 김성한 고려대 국제대학원장은 이 말의 의미를 “군이 군사안보를 강화하는 모습, 외교 뒤에 강력한 군사력이 버티고 있다는 모습을 보여줘 북한이 ‘외교적 방법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국방부는 이와 반대로 가고 있는 듯하다. 탄도미사일이라는 객관적 사실을 발표하는 것까지 자제해야 외교가 성공할 수 있다고 확신하는 것 같다. 정경두 국방부 장관은 1일 북한의 미사일 발사 의도를 두고 “대화로 풀어가려는 분명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숨겨진 의미”라고 국제사회에 강조하기도 했다.

물론 정부 정책 기조가 대북 유화책인 만큼 국방부 홀로 강경하긴 어렵다. 그렇다고 국방부가 ‘통일 및 남북대화·협력에 관한 정책 수립 등의 사무’를 하는 통일부 역할을 하는 게 맞는 것일까. 대화의 동력을 살리는 데 적극 나서야 할 건 통일부고, 이를 거드는 건 외교부다. 핵무장을 한 북한과 마주한 분단국가의 국방부가 정부의 대북 유화 정책 기조를 이유로 다른 부처처럼 ‘굿캅’ 역할을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군 고위 관계자는 “북한이 발사한 미사일을 아직까지도 탄도미사일이라고 하지 않는 건 국익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나 탄도미사일 함구령으로 얻게 될 국익의 실체는 모호하다. 북한마저도 이미 ‘북한판 이스칸데르’를 탄도미사일이라고 한 상황. 북한과 유지해야 할 최소한의 전략적 ‘밀당’이 실종되면 북한엔 “한국은 어차피 우리 편”이라는 잘못된 시그널만 줄 수 있다. 부처별로 ‘굿캅-배드캅’으로 역할을 분담해 북한이 적당한 긴장감을 갖게 할 필요가 있는 이유다.

물론 2017년 북한이 한창 도발을 이어갔을 때처럼 합동참모본부 장군이 나와 “무모한 도발은 북한의 붕괴를 재촉할 것”이라며 초강경 대응을 하라는 건 아니다. 단지 외교적 판단보다는 군사안보적 판단에 집중하는 부처 하나는 제대로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탄도미사일은 탄도미사일이라고 있는 그대로 발표해야 군이 정치적 상황과 무관하게 대북 군사 상황을 냉정하게 평가하고 있음을 알릴 수 있고, 국민적 신뢰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비핵화 해법도 사실에 기반해야 나올 수 있다.
 
손효주 정치부 기자 hjs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