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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는 심복 검찰총장 찾지 마라[오늘과 내일/이명건]

입력 | 2019-06-12 03:00:00

‘윤석열이냐 아니냐’… 차기 구도
‘권력 굴종 거부’ 헌신이 지표 돼야




이명건 사회부장

“너무 반듯한 선비 같아서… 이런 난세에는 많이 힘들지.”

전직 검찰 고위 간부는 문무일 검찰총장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검찰의 힘을 빼는 데 초점을 맞춘 검경 수사권 조정 및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 입법을 밀어붙이는 청와대와 여당에 속 시원하게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다. 공개적으로 비판은 했지만 미흡하다는 것이다. 이런 평가에는 문 총장이 ‘사퇴 카드’를 쓸 타이밍을 놓쳤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4월 말 국회에서 관련 법안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 문제로 충돌이 일어났을 때 사표를 안 던지고 해외 출장을 떠난 게 실책이라는 판단이다. 검찰 역사에서 총장 사퇴는 대통령의 뜻을 거스를 수밖에 없는 경우 최후의 저항 수단이었다.

당시 문 총장 주변에선 ‘사퇴하면 검찰이 패스트트랙에 반대하는 자유한국당과 한패로 몰리게 된다’는 반대론이 많았다고 한다. 그는 7월 24일까지 2년 임기를 채울 것으로 보인다.

문 총장의 이런 모습을 지켜본 청와대는 후임으로 누굴 선택할까. 법무부 검찰총장후보추천위원회는 내일(13일) 회의를 열어 검증 대상 8명 중 문재인 대통령에게 제청할 3, 4명을 추릴 예정이다. 문 대통령은 그중 1명을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칠 최종 후보자로 지명하게 된다.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이냐 아니냐다.”

청와대 분위기를 잘 아는 인사는 차기 총장 지명 구도를 이렇게 분석했다. 다른 후보가 7명이나 있는데 왜 그럴까. 청와대가 1차로 경찰 등 사정 당국에 검증을 요청한 후보자는 봉욱 대검찰청 차장(54·사법연수원 19기), 김오수 법무부 차관(56·20기), 이금로 수원고검장(54·20기), 윤 지검장(59·23기)이다. 2차 검증 대상은 조희진 전 서울동부지검장(57·19기), 황철규 부산고검장(55·19기), 조은석 법무연수원장(54·19기), 김호철 대구고검장(52·20기)이었다. 윤 지검장이 나이는 제일 많지만, 연수원 기수는 가장 낮다. 현직 중 혼자 검사장이다. 다른 현직 6명은 모두 고검장이다.

그런데도 ‘윤석열이냐 아니냐’라는 건 청와대가 국정 농단 등의 적폐 청산 수사를 주도한 그를 높게 평가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문 대통령은 취임 직후 그를 고검 검사에서 검사장으로 승진시키면서 고검장이 맡던 서울중앙지검장에 임명했을 때 이미 이번 총장 인선을 염두에 뒀을지 모른다. 앞서 2013년 국정원 댓글 사건 수사 외압을 폭로하고 고검 검사로 좌천됐던 게 공적(功績)으로 평가받았다. 하지만 그의 총장 선임엔 부담이 따른다. 20명이 넘는 연수원 선배나 동기 중 상당수가 검찰을 떠나게 돼 조직 운용에 문제가 생긴다는 지적이 검찰 안팎에서 많이 나온다. 또 그의 수사 대상자들은 주변을 들추며 비토 여론을 확산시키고 있다.

청와대 안팎에선 총장 낙점의 관건을 ‘수사권 조정에 대한 태도’로 본다. 문 대통령과 조국 대통령민정수석이 수사권 조정에 사활을 걸었다는 말이 나올 정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사권 조정 법안에 반대하면서 사표는 쓰지 않은 문 총장이 후보들의 비교 대상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지표는 없느니만 못하다. 검찰 대부분이 수사권 조정 법안에 반대하는 와중에 청와대의 심복을 찾는 게 아니라면 말이다. 이미 우리는 정권에 충성한다며 수사를 주저해 정권 몰락의 단초를 제공한 총장을 여럿 봤다. 그렇지 않다면 청와대 앞에서 면종복배(面從腹背)하라는 것밖에 안 된다. 앞에서 웃고 뒤통수를 칠 총장을 원하는가.

오히려 문 총장처럼 권력에 굴종하지 않고 소신을 지켰는지, 검사로서 거악 척결에 기여했는지를 지표로 삼아야 한다. 그런 헌신도 안 한 자라면 합리적인 수사권 조정에 방해만 될 뿐이다.

이명건 사회부장 gun4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