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이냐 아니냐’… 차기 구도 ‘권력 굴종 거부’ 헌신이 지표 돼야
이명건 사회부장
전직 검찰 고위 간부는 문무일 검찰총장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검찰의 힘을 빼는 데 초점을 맞춘 검경 수사권 조정 및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 입법을 밀어붙이는 청와대와 여당에 속 시원하게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다. 공개적으로 비판은 했지만 미흡하다는 것이다. 이런 평가에는 문 총장이 ‘사퇴 카드’를 쓸 타이밍을 놓쳤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4월 말 국회에서 관련 법안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 문제로 충돌이 일어났을 때 사표를 안 던지고 해외 출장을 떠난 게 실책이라는 판단이다. 검찰 역사에서 총장 사퇴는 대통령의 뜻을 거스를 수밖에 없는 경우 최후의 저항 수단이었다.
당시 문 총장 주변에선 ‘사퇴하면 검찰이 패스트트랙에 반대하는 자유한국당과 한패로 몰리게 된다’는 반대론이 많았다고 한다. 그는 7월 24일까지 2년 임기를 채울 것으로 보인다.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이냐 아니냐다.”
청와대 분위기를 잘 아는 인사는 차기 총장 지명 구도를 이렇게 분석했다. 다른 후보가 7명이나 있는데 왜 그럴까. 청와대가 1차로 경찰 등 사정 당국에 검증을 요청한 후보자는 봉욱 대검찰청 차장(54·사법연수원 19기), 김오수 법무부 차관(56·20기), 이금로 수원고검장(54·20기), 윤 지검장(59·23기)이다. 2차 검증 대상은 조희진 전 서울동부지검장(57·19기), 황철규 부산고검장(55·19기), 조은석 법무연수원장(54·19기), 김호철 대구고검장(52·20기)이었다. 윤 지검장이 나이는 제일 많지만, 연수원 기수는 가장 낮다. 현직 중 혼자 검사장이다. 다른 현직 6명은 모두 고검장이다.
그런데도 ‘윤석열이냐 아니냐’라는 건 청와대가 국정 농단 등의 적폐 청산 수사를 주도한 그를 높게 평가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문 대통령은 취임 직후 그를 고검 검사에서 검사장으로 승진시키면서 고검장이 맡던 서울중앙지검장에 임명했을 때 이미 이번 총장 인선을 염두에 뒀을지 모른다. 앞서 2013년 국정원 댓글 사건 수사 외압을 폭로하고 고검 검사로 좌천됐던 게 공적(功績)으로 평가받았다. 하지만 그의 총장 선임엔 부담이 따른다. 20명이 넘는 연수원 선배나 동기 중 상당수가 검찰을 떠나게 돼 조직 운용에 문제가 생긴다는 지적이 검찰 안팎에서 많이 나온다. 또 그의 수사 대상자들은 주변을 들추며 비토 여론을 확산시키고 있다.
청와대 안팎에선 총장 낙점의 관건을 ‘수사권 조정에 대한 태도’로 본다. 문 대통령과 조국 대통령민정수석이 수사권 조정에 사활을 걸었다는 말이 나올 정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사권 조정 법안에 반대하면서 사표는 쓰지 않은 문 총장이 후보들의 비교 대상이 되는 것이다.
오히려 문 총장처럼 권력에 굴종하지 않고 소신을 지켰는지, 검사로서 거악 척결에 기여했는지를 지표로 삼아야 한다. 그런 헌신도 안 한 자라면 합리적인 수사권 조정에 방해만 될 뿐이다.
이명건 사회부장 gun4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