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5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청소년 축제에서 아이돌 그룹을 찍기 위해 카메라에 망원렌즈를 장착한 채 사다리 위에 올라간 사람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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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은 룰은 국제대회인 올림픽이나 월드컵에서도 마찬가지다. 조직위원회는 선수들을 가장 잘 찍을 수 있는 자리를 사진기자와 중계카메라에 배정한다. 지정된 자리 이외에서는 기자라도 망원렌즈 사용을 못 한다. 촬영한 사진은 상업적인 용도로는 판매할 수 없다. 취재진도 취재카드를 받지 않으면 기자석으로 갈 수 없고 사진이나 영상도 찍을 수 없다.
지난달 말 서울 청계광장에서는 청소년 축제가 열렸다. 학생들을 위한 행사인 만큼 아이돌 그룹을 초대해 공연을 벌였다. 주변에는 수백 명이 몰려 있었다. 하지만 가까이 가보니 학생들과 사다리 위에 올라간 사람들로 나뉘었다. 학생들은 노래를 같이 부르거나 춤을 추는 등 공연을 즐기고 있었다. 하지만 사다리 위 사람들은 카메라 셔터만 계속 누르고 있었다. 얼마 뒤 인터넷에는 이들이 촬영한 사진이 판매되고, 유튜브에는 공연영상이 클릭을 기다리고 있었다. 선정적인 모습을 ‘움짤’로 만들어 반복해 보여주는 경우도 있었다. 이들은 연예인 사진, 특히 가수들을 전문적으로 찍어 수익을 올리는 ‘팝파라치(팝·Pop)+파파라치)’라 할 수 있다.
이런 현상은 몇 년 사이 급격히 증가했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외국에 비해 파파라치의 존재가 미미했다. 파파라치 사진을 소비하는 시장이 형성돼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유튜브와 팬덤 문화 등 다양한 요소들이 합쳐져 수익 창출이 가능하게 됐다. 더군다나 워너원, 방탄소년단을 비롯한 아이돌 그룹이 글로벌 스타로 성장한 것도 한몫했다. 그리고 가수가 배우에 비해 노출 빈도가 높은 것도 이유 중 하나다. 드라마나 영화 촬영장에서는 팬이나 일반인이 카메라로 연기자를 촬영하면 제지한다. 하지만 가수들은 축제나 행사장에서 관객 바로 앞에서 공연을 펼친다. 비싼 가격으로 구입이 어려웠던 카메라 장비의 렌털이 이뤄지면서 고화질 사진 촬영이 손쉬워진 사정도 있다.
서울 여의도의 한 방송국 앞에는 항상 수십 개의 사다리가 인도에 어지럽게 묶여 있다. 팝파라치들이 음악프로에 출연하는 가수들을 찍으려 준비해 놓은 것이다. 이들의 행동이 논란이 된 경우도 있다. 아이돌과 같은 항공권을 예매한 뒤 공항 면세구역과 심지어 비행기까지 탑승해 촬영한 뒤 표를 반환하기도 했다.
하지만 연예산업 관계자 일부는 이들을 의도적으로 이용하기도 한다. 그 예로 ‘공항패션’이라 불리며 출입국 모습을 공개하는 경우다. 연예인을 모델 삼아 특정 의류를 입게 하거나 가방을 들도록 해 제품을 노출하는데 팝파라치들을 활용하는 것.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K팝 스타들의 콘텐츠는 이제 커다란 산업으로 발전하고 있다. 팬처럼 행동하며 사진과 영상을 찍어 불법적으로 수익을 올리는 일부 팝파라치들 때문에 한류가 시들지 않기를 바란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