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사위 “전기적 충격에 취약하고… 설치 부주의-운영 미숙 등 겹쳐” 일부 배터리엔 설계상 결함 지적… 안전대비 없이 서두른 정부도 책임 가동 중단된 522곳, 순차 재가동
2017년부터 올 5월까지 23차례 발생한 에너지저장장치(ESS) 화재 사고는 미흡한 안전기준과 관리 부실 등이 복합된 ‘인재(人災)’인 것으로 결론이 났다.
ESS는 태양광과 풍력발전 등으로 만든 전기를 저장했다가 필요할 때 방출하는 장치로 재생에너지를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데 필수적인 설비다. 정부가 탈원전 정책을 추진하면서 ESS를 무리하게 보급하다가 안전관리에 허점을 드러냈다는 지적이 나온다.
산업통상자원부는 11일 정부세종청사에서 ‘민관합동 ESS 화재사고 원인조사위원회’가 지난해 12월부터 5개월간 진행한 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조사위는 ESS 화재 원인으로 △전기적 충격의 영향을 차단하는 시스템 미흡 △먼지 결로 등 외부 환경 △설치 부주의 △소프트웨어 설계 및 운영 미흡을 지목했다. 조사위 측은 “화재 현장이 전소돼 원인을 특정하기 어렵고, 어떤 경우는 한 가지 원인, 어떤 경우에는 한두 가지 원인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올해 1분기(1∼3월) ‘수주절벽’을 겪었던 국내 ESS 배터리 제조업계는 “배터리가 직접 원인이 아니라는 점이 밝혀졌다”며 환영하는 분위기다. 한 제조사 관계자는 “한국 제조 배터리 판매가 사실상 중단된 사이 중국산 제품이 국내 시장을 침투하고 있다”고 말했다.
화재사고의 책임 소재와 관련해 조사위원장인 김정훈 홍익대 교수는 “ESS 기술은 전 세계에서 한국이 최초이고, 가장 앞서 있어 어느 수준의 안전장치가 적절한지 예단할 수 없다”고 했다. 산업부 역시 “조사위에서 밝힌 화재 원인이 현재의 법이나 규정에 위반돼야 각 업체에 책임을 물을 수 있는데 관련 규정이 없어 어려운 상황”이라고 밝혔다.
정책적으로 ESS 장비 보급을 지원하면서도 관련 안전기준은 미흡했다는 점에서 정부도 책임을 피할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 ESS 가동 시 온도 및 습도는 ‘적절히 관리’하라고만 규정돼 있다. 설계나 시공, 검사 기준 등 공정별 참고 매뉴얼, ESS에 특화된 소방기준도 없었다.
정부는 뒤늦게 실내 설치 용량을 600kW로 제한하고, 법정 검사 주기를 기존 4년에서 1∼2년으로 줄이는 등의 안전기준과 소방기준을 마련하기로 했다. 2016년 74곳이던 신규 ESS 설치 사업장은 지난해 말 947곳으로 늘었다. 현재 가동이 중단된 522곳은 순차적으로 재가동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