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명호 교수, 신간서 ‘고려사’ 분석… ‘고려 황제’ 부정 현재까지 이어져
북한 개성에서 출토된 고려 태조 왕건 상. 머리에는 황제가 쓰는 통천관(通天冠)을 쓰고 있다. 동아일보DB
노명호 서울대 명예교수(사진)는 신간 ‘고려사와 고려사절요의 사료적 특성’(지식산업사·2만2000원)에서 “역사학계는 ‘고려사’ 편찬의 직서(直書·그대로 씀) 원칙과 객관성을 과도하게 평가했고, 고려의 황제제도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결과를 낳았다”고 밝혔다.
‘고려사’는 조선 세종 대 편찬된 사서로 고려시대 연구의 기본적인 사료로 꼽힌다. 유교적 역사 편찬 방식인 ‘술이부작(述而不作·자료에 의거해 서술하며 편찬자의 작문으로 서술하지 않음)’에 따라 쓰여 사료집과 같은 객관성을 갖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노 교수는 고려사 편찬 시 조선 조정에서 고려 황제제도의 서술 문제로 장기간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다는 데 주목했다.
그러나 직서 원칙은 부분적으로만 적용됐다. 이미 앞서 고려가 원나라에 복속된 시절에도 ‘고려 황제’ ‘고려 천자’는 금기어였다. 금기는 조선 건국 초에도 명나라와의 긴장관계 탓에 그대로 이어졌다. 정도전(1342∼1398)은 ‘고려국사’를 편찬하면서 ‘고려 황제’ 표현을 ‘참의지사(僭擬之事·참람하게 흉내 낸 사실)’로 보고 ‘종(宗)’을 ‘왕’으로 개서(改書·고쳐 씀)했다.
직서 원칙은 다수 신료들의 반발로 후퇴하기도 했다. 고려가 황제제도를 시행하던 시기 군주의 사면령에 대한 서술도 그 가운데 하나다. 신료들은 고려 사료에 ‘대사천하(大赦天下·천하에 사면령을 내림)’라고 한 것을 ‘대사경내(大赦境內·영역 내에 사면령을 내림)’라 고쳐 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세종은 고쳐 쓰지는 않고, ‘천하’ 두 글자를 삭제하는 선에서 타협했다. 이처럼 직서 원칙의 예외는 점차 늘어났다.
노 교수는 고려에는 황제제도가 있을 수 없다는 편견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꼬집었다. 고려의 궁중 의례용 속악(俗樂)인 ‘풍입송(風入松)’ 서두에 나오는 “해동천자당금제(海東天子當今帝), 불보천조부화래(佛補天助敷化來)”는 ‘제(帝)’와 ‘불(佛)’ 사이를 끊어 “해동천자이신 지금의 황제는, 부처가 돕고 하늘이 도와 널리 교화를 펴시도다”라고 해석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러나 ‘제(帝)’와 ‘불(佛)’을 이어 붙여 해동천자가 ‘제불(帝佛)’이라는 잘못된 번역이 일부 논저에서 이어진다. 노 교수는 “‘제불(帝佛)’이라는 알 수 없는 존재를 만들어내면서까지 ‘고려 황제’를 부정하는 건 여전한 선입견 탓”이라고 말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