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정, 가업상속공제 개편안 공개
내년부터 중소·중견기업 오너가 자녀에게 가업을 상속할 때 세제 혜택을 받을 경우 업종, 자산, 고용을 의무적으로 유지해야 하는 기간을 현행 10년에서 7년으로 줄이는 방안을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이 내놓았다. 공제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기업 범위(연매출 3000억 원 미만)와 공제한도(500억 원)를 늘려달라는 산업계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가업 상속을 활성화해 성장동력을 키워야 한다는 경제계의 주장과 ‘부의 대물림’을 조장할 수 있다는 시민단체의 비판을 감안한 절충안인 셈이다. 하지만 업종 간 장벽이 무너지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기업을 과거의 틀에 묶어두는 어정쩡한 규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 가업상속공제 사후관리 요건 완화
개편안에 따르면 가업상속공제 후 고용을 의무적으로 유지토록 한 규제가 다소 완화됐다. 지금은 가업 상속 후 10년 동안 정규직 고용인원을 종전의 100% 수준으로 유지해야 한다. 중견기업은 오히려 고용을 더 늘려 종전의 120%를 지켜야 한다. 이번 제도 개편으로 중소기업과 중견기업은 모두 7년 동안 고용이 종전의 100%가 되도록 하면 된다.
당초 경영계는 고용인원 수 대신 독일처럼 인건비 총액을 기준으로 고용유지 조건을 바꿔달라고 요청했지만 반영되지 않았다. 기업 혁신 과정에서 자동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인력이 줄어들 수밖에 없는 사정을 감안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중소기업중앙회 관계자는 스마트 공장 확대로 인력이 줄어들 가능성을 고려해줬으면 한다”고 했다.
당정은 가업상속공제 제도와 별개로 상속세를 최장 20년간 나눠 내는 연부연납제도의 대상도 확대하기로 했다. 지금은 연매출 3000억 원 미만 기업이 해당되지만 모든 중소·중견기업으로 늘린다는 방침이다.
○ ‘융합’ 추세 거스르는 업종 제한 한계
하지만 대분류상에 있는 업종끼리는 전환을 까다롭게 해놨다. 예를 들어 가업상속공제를 받은 화장품업체가 바이오업종으로 영역을 넓히려면 정부가 만든 전문가위원회 심의를 통과해야 한다. 정부가 중견·중소기업에 혁신을 주문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세금 혜택을 빌미로 기업의 변신을 제한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가업상속공제를 부의 대물림 수단으로 보는 시각에 대해 방어장치를 두려다 보니 핵심을 건드리지 못한 때문으로 풀이된다. 독일과 일본은 가업상속공제를 받더라도 업종 변경에 제한을 받지 않는다. 오문성 한국조세정책학회장은 “업종 변경을 막아서 기업이 사양 산업에 매달리게 되면 일자리나 세수에도 부정적 영향을 준다”며 “기업이 원할 때 자유롭게 업종변경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혁신성장이 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100년 기업’이라고 해서 반드시 최초의 가업만 고수하기 힘든 현실을 감안해 제도를 유연하게 개편해야 한다는 것이다.
○ 증여 유도 등 시대변화 맞는 개편엔 손 못 대
가업상속공제 개편에서 주요한 이슈 중 하나였던 상속세율 완화에 대해 정부는 ‘절대 수용 불가’라는 견해다. 재계는 한국 상속세율이 최고 50%로 상속세가 있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9개 회원국의 평균 최고세율(26.6%)보다 크게 높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김병규 기재부 세제실장은 “실제로 내는 세금을 기준으로 한 상속세 실효세율은 19.5% 수준”이라면서 “명목세율은 높지만 실효세율은 상당히 낮기 때문에 세율 조정은 전혀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했다.
세종=김준일 jikim@donga.com·신희철·최혜령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