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기업들 ‘전략적 짝짓기’
완성차 업체와 전기차 배터리 제조사들이 국경을 뛰어넘는 합종연횡에 앞다퉈 나서고 있다. 완성차 업체가 주축이 돼 수직적 하청시스템을 구축했던 기존 내연기관차 산업과 달리 부품과 완성차 업체가 동등한 위치에서 서로 합작하고 제휴하는 것이다. 배터리가 차량의 가격과 품질을 좌우하는 전기차 산업의 특징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LG화학은 13일 중국 지리(吉利)자동차와 전기차 배터리 제조를 위한 합작법인을 설립한다고 밝혔다. 두 회사는 각각 1034억 원을 출자해 지분을 50%씩 나눠 가지기로 했다. 2021년 말까지 10GWh(기가와트시) 규모의 배터리 생산공장을 중국에 짓기로 하고 터를 물색 중이다. 합작사는 신규 공장 마련에 5000억 원가량을 투자할 것으로 전망된다.
지리자동차는 지난해 중국 내수시장 판매량이 147만 대에 이른다. 중국 로컬 브랜드 중에선 판매량이 가장 많고, 외국 브랜드를 포함해도 폭스바겐(401만 대)과 GM(306만 대)에 이어 3위인 대형 완성차 업체다. 2020년부터 판매량의 90%를 전기차로 전환할 계획이다. 이를 위한 파트너로 LG화학을 택한 것이다. 김종현 LG화학 전지사업본부장은 “전 세계 전기차 시장의 50%를 차지하는 중국 시장을 공략할 기반을 마련하게 됐다”고 평가했다.
이 같은 연합전선 구축은 일차적으로 배터리의 안정적 수급을 위해서다. 현재 배터리 제조사들은 한국, 중국, 일본에 편중돼 있는 데다 공급이 수요에 비해 부족하다. 실제로 미국 테슬라, 독일 아우디 등은 배터리 수급 문제로 전기차 출시가 지연되기도 했다.
또 단순한 수급 차원을 넘어서는 전략적인 포석도 깔려 있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배터리는 전기차 원가의 30% 이상을 차지하는 핵심 부품이면서 성능을 좌우하는 결정적 역할을 한다”며 “완성차 업체 입장에서는 직접 생산이 여의치 않을 경우 합작법인을 통해서라도 최적의 배터리를 생산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전기차의 경쟁력을 위해선 무턱대고 배터리를 다른 업체에 의존할 수만은 없다는 것이다. 세계 최대 전기차 시장인 중국에서 상위 6개 업체가 모두 CATL과 합작법인을 설립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배터리 제조사 입장에서도 대형 완성차 업체와 협력해 전기차 배터리 업체의 ‘표준 선점’을 노릴 수 있게 된다. 전기차 배터리는 각형, 파우치(주머니)형, 원통형 등 세 가지로 나뉘고 업체마다 규격도 다르다. 초기에는 테슬라가 사용하는 파나소닉의 원통형 배터리가 대세인 듯했지만 중국, 유럽 기업들이 전기차 시장에 진출하면서 여러 배터리가 혼재돼 쓰이고 있다. 배터리 제조사 관계자는 “대형 자동차 업체와의 협력을 늘릴수록 사실상의 표준을 선점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말했다.
황태호 기자 tae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