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김포시가 올 4월 1일 한강 하구에서 개최한 물길 열기 행사에서 작은 배들이 물길을 열어가고 있다. 김포시 제공
○ 애기의 한(恨) 풀다
북한 선전마을과 송악산이 바라보이는 김포시 월곶면 조강리 애기봉. 해발 155m 정상에서 강 건너 북한 황해도 개풍군 임한면 조강리와의 거리는 불과 1.3km. 북한과 가장 가까운 남측 전망대여서 고향을 그리워하는 실향민 발길이 끊이지 않아 망배단(望拜壇)까지 갖췄다. 병자호란 때 평안감사와 이별한 평양 기생 애기의 애틋한 전설이 서린 곳이란 얘기를 들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애기의 한이 강 하나를 두고 오가지 못하는 이산가족의 한과 같다”며 애기봉이라 이름 지었다고 전해진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지원을 받는 ‘북한 고려 문화유산 디지털 체험관’에서는 개성의 유적2곳의 VR 체험을 할 수 있다. 애기봉에서 고려 개성 타임머신 VR 열차를 ‘타면’ 조강철교를 건너 개성 송악산과 성곽, 남대문, 경천자, 선죽교, 공민왕릉, 저잣거리를 돌아볼 수 있다. 1000년 전 고려 수도의 생생한 모습과 고증을 거쳐 3차원(3D) 디지털 기술로 재현한 고려왕궁 터 만월대, 국가행사 팔관회를 감상할 수 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개성역사유적지구의 ‘고려 첨성대 VR 코너’에서는 천체 운행과 위치를 측정하는 혼천의를 들고 별을 관찰하며 사계절의 변화를 바람 향기 촉감 등으로 체험할 수 있다.
애기봉 정상에는 정전 65주년을 기념해 지난해 세계적 디자이너 아널드 슈워츠먼이 설계해 제작한 ‘남북평화의 종’이 있다. 영문자 ‘UN’을 형상화한 높이 9m의 청동 조형물에 에밀레종(성덕대왕 신종)을 복원한 국가중요무형문화재 주철장(鑄鐵匠) 원광식 씨가 제작한 2m 크기 평화의 종을 매달았다. 이 종은 비무장지대(DMZ) 철조망과 애기봉 성탄절 철탑, 6·25전쟁 희생자 유골 발굴 현장에서 수거한 탄피를 섞어 전통적인 범종 제작기법으로 만들었다. 평화생태공원이 개장하는 올해 말 제야의 종소리로 타종한 후 정전기념일(7월 27일), 유엔의 날(10월 24일) 등 의미 있는 날에 종을 칠 예정이다.
평화생태공원은 이색 시설로 꾸며진다. 전망대 일부에는 유리바닥을 깔아 걸음을 옮길 때마다 시각적으로 유리가 깨진 듯 갈라졌다 복구되는 영상을 보여주는 ‘유리다리 스카이워크’가 설치된다. 전망대의 각 전시관(조강평화관 한강생태관 통일미래관 디지털체험관) 사이에는 생태탐방로(총연장 1.5km)가 들어서고 해병대전적비와 연결되는 흔들다리(30m)와 하늘숲 색색정원 등 6개 테마정원도 생긴다.
○ 평화의 길 열다
평화로에서 보는 해강안 일대는 한강과 임진강, 서해가 만나는 크고 넓은 물줄기로서 조강 또는 할아비강으로 불린다. 과거 충청도와 전라도에서 각종 물자를 싣고 온 배가 서울로 들어가는 관문으로 주변에 10여 개 포구가 있었다. 유도와 시암리 습지는 물론이고 북한 땅도 한눈에 들어온다. 1996년 대홍수 때 북한에서 떠내려온 황소가 유도에 고립돼 해병대가 구출작전을 펼치기도 했다. 2007년 남북 정상은 이 황소를 떠올리며 한강하구 공동 이용과 평화수역 설정 등을 담은 10·4 공동선언을 채택했으나 실현되지는 않았다.
김포시는 올해 4월 1일 시민의 날을 맞아 전류리 포구에서 시암리 습지까지 한강하구 물길 열기 사전답사를 했다. 정하영 김포시장과 환경전문가를 비롯한 약 40명이 배 10척에 나눠 타고 어로한계선을 넘어 한강하구 중립수역까지 들어갔다. 정 시장은 답사를 마친 뒤 “민간선박이 처음으로 한강하구 중립수역까지 다녀왔다. 한강 임진강 조강이 만나는 세물머리 중립수역까지는 가지 못했지만 한강에 평화가 오고 있다”고 강조했다. 김포시는 이곳에서의 민간선박 자유항행 허용을 핵심으로 하는 평화적 이용을 정부에 요청했다. 한강하구 야생생태계 보존을 위한 ‘평화의 섬, 유도 프로젝트’를 마련하는 등 평화와 생태를 주제로 다양한 사업을 펼치고 있다.
▼정하영 김포시장 인터뷰 “한강 하구의 평화적 이용으로 남북교류 돌파구 열겠다”▼
정하영 경기 김포시장(57·사진)은 13일 지도에서 한강 하류를 가리키며 가슴이 답답해진다고 했다. 예부터 물류 중심지였던 보배를 썩히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정 시장은 올 4월 생태 전문가들과 함께 배를 타고 한강 하구 물길 답사에 나섰다. 전류리 포구에서 북한 황소가 떠내려 왔던 유도까지 왕복 45km를 운항하려 했으나 중립수역 입구까지밖에 가지 못했다. 민간 선박의 중립수역 진입에 대한 남북 당국의 협조를 받지 못한 것이다. 정 시장은 평화생태관광벨트 구축을 김포시의 미래로 삼고 있다. 한강 하구의 평화적 이용을 통해 남북 교류의 돌파구를 마련하려는 그의 구상을 들어봤다.
―‘할아비강’으로도 불리는 조강은 어떤 곳인가.
―한강 하구를 어떻게 살리려 하나.
“한국의 4대강 중 한강에만 강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지점에 하구언이 없다. 바닷물과 민물이 자연스럽게 만나고 흩어지는 생태적 보고(寶庫)다. 평화를 토대로 한 생태관광벨트를 형성할 수 있는 최적지다. 아직도 2개 포구의 어선 약 30척이 숭어 장어 민물새우 황복을 잡고 있다. 어민들은 어로한계선을 500m 북쪽으로 옮겨달라고 한다. 민간 활동이 자유로워져야 평화를 이룰 수 있다고 본다. 남북이 한강 물길을 열어야 한다.”
―남북 교류 사업으로 구상하는 것이 있다면….
“남북 협력 분위기가 무르익었을 때 한강 이북의 접경지대 중심으로 교류 사업을 논의하면서 김포 지역을 제외하는 경향이 있었다. 남북 평화 시대를 맞으려면 역사·문화적으로 김포는 다른 어느 곳보다 중요하다. 김포 조강리와 북한 개풍군 조강리는 원래 한동네였다. 불과 2km 떨어진 두 지역을 연결하는 조강평화대교를 세우고 통일경제특구도 조성해야 한다. 김포에서 생산되는 쌀과 개풍군 차(茶)를 농산물 직거래 형태로 교환하고 남북의 조강리 학생들이 교류하는 사업을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추진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박희제 기자 min0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