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은 아마도 낙의의 영웅적 기개를 자임했을 것이고 또 소왕 같은 명군의 부재에 낙담했을지 모른다. 재능은 있으되 현실 정치로부터 소외되었던 역대 문인들이 이 시를 애송해 온 이유가 여기에 있다. 대개 시에서 금기시하는 지(之), 이(而) 같은 허사도 피하지 않았고, 1구 5언의 고정된 격식도 허물었다. 소외의 상처를 드러내고자 파격마저 감수한 것이리라.
퇴계 선생의 ‘도산십이곡’ 중에 이 시와 발상은 비슷하지만 주제는 판이한 시조가 있다. “고인도 날 못 보고 나도 고인 못 봬. 고인을 못 봬도 예던 길 앞에 있네. 예던 길 앞에 있거든 아니 예고 어쩔꼬.” ‘예다’는 ‘가다’의 옛말이다. 옛사람을 만날 수 없는 안타까움을 피력한 건 진자앙의 경우와 다를 바 없다. 하지만 퇴계는 옛사람이 이미 아득한 과거로 사라졌어도 그 자취가 남아 있다는 데서 희망을 찾는다. “예던 길 앞에 있거든 아니 예고 어쩔꼬”는 옛사람이 실천했던 대도를 충실히 따르리라는 각오다. 절망감에 그저 눈물만 흘렸던 진자앙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이준식 성균관대 중어중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