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출간 소식을 알리는 박막례 할머니. 유튜브 캡쳐
김유영 디지털뉴스팀 차장
인기 유튜버 박막례 할머니(72)가 팔뚝을 걷어붙이고 한껏 힘주며 이렇게 말한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포스터 ‘우리는 할 수 있다(We can do it)!’의 여자를 패러디한 장면. 평소 유쾌하고 호쾌한 할머니도 이때만큼은 울컥했다.
그는 전쟁 같은 삶을 살아냈다. 스무 살에 결혼하고 아이 셋을 뒀으나 ‘앙숙’(남편)은 집을 나가버렸다. 별수 없이 20대 중반 막노동에 뛰어들어 악착같이 버텼다. 낮엔 파출부 세 탕, 밤엔 식당일 나가면 자정에 들어오기 일쑤. 중년이 되어 쌈밥집을 차린 뒤엔 일흔 때까지 매일 오전 4시부터 일했다.
최근 이들이 펴낸 ‘박막례, 이대론 죽을 수 없다’는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종합 3위에 올랐다. 이달 7일 교보문고 광화문점에서 열린 할머니 사인회에서 대기표는 6분 만에 매진돼 인기를 실감케 했다.
젊은이들이 할머니에게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할머니는 꽃무늬 ‘몸뻬’나 뽀글이 파마, 계모임 화장 등 ‘한국 할머니’ 패션 화보로 해외에서까지 주목받았지만 이게 전부가 아니다. 때론 무심하게, 때론 퉁명스럽게 삶의 내공이 녹은 말들을 툭툭 뱉어낸다. 최근 할머니 영상을 ‘정주행’(이어보기)한다는 젊은이들은 ‘박막례 어록’까지 만들어 확산시킨다.
한번은 할머니가 스위스 여행에서 산악자전거를 타다가 넘어져 손등에 붕대를 감았다. 하지만 개의치 않았다. “다친 것도 추억이여. 이런 건 영광의 상처다. 내가 도전하려고 했다가 생긴 상처라 괜찮아. 금방 나을 거야.”
홀로 아이를 키우며 거액을 사기당했다가 2시간 만에 평상심을 되찾았다는 ‘젊은 박막례’도 꼭 이랬을 것 같다. 그는 자식이 화를 입은 것보다는 낫다고 여기고 다시 일어섰다.
패러글라이딩하는 박막례 할머니. 위즈덤하우스 제공
주변 시선을 아랑곳 않고 즐거움을 찾아내는 점도 할머니의 매력이다. 옷 살 땐 “이쁜 것은 눈에 보일 때 사야 돼요. 내년에는 없어요. 뚱뚱하고 날씬해 뵈는 것에 집착하지 마세요. 내 맘에 들면 사는 것이니께”라고 당부한다.
옛날 사진 앨범에서 35세 박막례는 강가에서 세상에서 제일로 우울한 표정으로, 하필이면 검은 옷을 입고 강물을 응시하고 있다. 비참한 인생, 종친 인생이라 했다. 그는 ‘어떤 길로 가든 고난은 오는 것이니께, 그냥 가던 길 열심히 걸어가라’고 한다. 72세 박막례는 ‘저마다의 어두운 터널’을 통과 중인 지금의 청춘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박막례도 이렇게 살았는디 왜 희망을 버리냐. 니네들도 힘들면 이대로 죽을 순 없다 하고 버텨. 이 악물고 버티면 이날이 오더라. 느그들 이겨내고 힘내라. 희망 버렸으면 주워.”
김유영 디지털뉴스팀 차장 ab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