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을 든 여자/캐머스 데이비스 지음·황성원 옮김/448쪽·1만8000원·메디치
사진 출처 포틀랜드 고기 공동체 홈페이지
마침 절묘한 타이밍이 다가왔다. 10년간 몸담은 직장에서 상사와의 불화로 해고당했고, 평생을 함께할 줄 알았던 연인과도 이별했다. 우연히 거의 사용하지 않던 신용카드가 눈에 들어왔다. 프랑스 남서부의 시골마을 가스코뉴행 비행기 표를 구입하고, 고민 없이 떠났다. 가스코뉴의 한 도축장에 도착한 저자는 펜 대신 칼을 집어 든다. 이후 저자는 음식과 고기, 육식의 본질을 확인하는 진짜배기 도축사로 변신해 간다.
프랑스에서 동물을 대하는 진정성 있는 도축 방법을 경험한 저자는 육식에 대해 “산업화가 우리의 식품 시스템을 점령한 이후 더 이상 우리 것이 아니게 된 지식과 기술, 감각을 다시 발굴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저자가 굿미트 프로젝트에서 고기 강의를 하는 모습. 사진 출처 cooking up a story 사이트
미국으로 돌아온 그는 프랑스에서 배운 도축과 정형 등을 소개하는 ‘포틀랜드 고기 공동체’를 설립한다. 육식 비율이 높으면서도 도축업자를 바라보는 사회적 편견이 강하고, 고기를 만들어낸 죽음을 연상시키는 문화를 금기시하는 미국 사회에서 과감한 시도였다. 지역사회에서는 “노골적이고 폭력적이다” “비양심적이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왔다. 그러나 저자는 햄 한 조각조차 어떻게 접시 위에 올라오게 되는지 처음부터 끝까지 알리겠다는 각오를 유지한다. 결국 저자의 뜻에 동참한 이들이 늘어났고, 2014년부터는 미국 전역으로 프로그램을 확대한 ‘굿미트 프로젝트’를 선보이며 새로운 육식 문화를 전파하고 있다.
육식과 도축에 대한 내용이 주를 이루지만 책 전반에는 삶의 확실성과 정직함을 찾기 위한 저자의 용기와 집념이 곳곳에 배어 있다.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인문학 강연을 듣거나 유기농 음식을 찾는 것이 유행처럼 퍼지고 있지만 정작 본질에 다가서기 위한 진지한 노력과 경험이 부족한 한국 사회에 신선한 통찰을 제공한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