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태의 세계/고쿠분 고이치로·박성관 옮김/408쪽·2만3000원·동아시아
능동과 수동의 대립은 필연적인 것처럼 우리 사고 깊숙한 곳을 지배하고 있다. ‘생각의 틀’인 언어에도 ‘능동태’와 ‘수동태’로 반영돼 있다. 일본의 대표적 철학자인 저자는 능동태도 수동태도 아닌 그 중간이라고 알려진 그리스어의 문법용어 ‘중동태(中動態·middle voice)’라는 개념을 끌어들여 행위의 주체와 책임에 대한 담론을 풀어낸다.
이 책의 원고들은 원래 2014년 일본의 ‘정신간호’라는 잡지에 연재됐고 의학서원 출판사가 발행하는 ‘돌봄(care)’ 시리즈의 한 권으로 출간됐다. 철학자로서 정신분석을 포함한 의료에 관심을 갖던 중 의존증 환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실천적 고민에서 연구를 시작한 점이 인상적이다. 중동태에서 출발한 연구가 스피노자와 푸코, 아렌트까지 언어학과 철학의 경계를 종횡무진 넘나든다.
이서현 기자 baltika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