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인복 ETRI 위성기술연구그룹장
염인복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위성기술연구그룹장(사진)은 “ICT 강국이라 자부하는 한국에서 의외로 소외된 분야가 통신위성”이라며 “통신위성 개발을 포기하면 우주의 ‘위성 영토’를 잃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염 그룹장은 1990년부터 한국 통신위성의 탑재체 기술을 연구해 온 이 분야 대표적인 국내 연구자이다. 통신해양기상위성 ‘천리안 1호’의 통신 탑재체를 개발할 때부터 참여해 지금까지 한 우물만 팠다. 그는 11일 대전 ETRI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통신위성 분야 국가 연구개발(R&D) 과제도 거의 없는 현실이어서 치열한 통신위성 운영 궤도 및 주파수 확보 경쟁에서 불리한 위치에 설 것”이라고 말했다.
염 그룹장은 “한반도 3만6000km 상공에 위치한 통신해양기상위성 천리안 1호의 후속인 천리안 2A, 2B만 봐도 통신위성에 대한 한국의 무관심을 알 수 있다”고 지적했다. 두 위성은 천리안 1호의 세 가지 임무 가운데 기상(2A)과 해양·환경 관측(2B) 기능을 각각 물려받았다. 하지만 통신위성은 없다. 염 그룹장은 “천리안 1호의 통신 탑재체를 자체 개발하면서 당시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확보했지만, 이후 후속 연구과제가 없어 30∼40명에 이르던 연구팀이 대학 등으로 뿔뿔이 흩어진 상태”라며 안타까워했다. “현재는 소수 핵심 인력만 남아 겨우 기초연구를 하고 있는데 이대로 가다가 연구의 대가 끊길까 걱정된다”는 것이다.
안보 문제도 걸려 있다. 자국 위성을 통해 정보를 주고받는 것이야말로 해킹의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장 안전한 방법이다. 상업적 가치는 폭발적으로 느는 중이다. 현재 전 세계 위성시장의 규모는 약 300조 원으로 추정된다. 미국의 투자은행 메릴린치는 2017년 이 시장이 2045년경 10배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가운데 절반이 통신위성 시장이다. 특히 지상의 위성 단말기 시장이 크다. 자율주행 선박과 드론 등 무인이동체가 본격적으로 활용되면 통신위성과 단말기 수요는 더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다행히, 뒤늦게나마 올해 새로운 통신위성 기획연구가 시작됐다. 염 그룹장은 “올해 말 예비타당성조사를 신청할 계획”이라며 “예타를 통과해 2021년부터 차세대 통신위성 개발에 뛰어드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위성 개발부터 발사까지는 다시 4, 5년의 시간이 걸린다. 빨라야 2026년에야 우리 기술로 만든 고성능 통신위성이 다시 궤도에 오른다. 염 그룹장은 “이번 R&D 과제는 후속 세대를 위한 것”이라며 “언젠가 한국이 독자적으로 위성통신망을 구축하는 계기가 되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윤신영 동아사이언스 기자 ashill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