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권 구입 비용에 개도국을 돕는 기금을 부과하는 것은 세계적으로 보편적인 제도다. 한국뿐만 아니라 프랑스와 칠레 등 10개국이 이런 기금을 운용하고 있다. 한 해 약 300억 원이 걷히는 국제질병퇴치기금은 질병 퇴치 사업을 벌이는 다양한 국제기구와 비정부기구(NGO)들에 지원된다. 에이즈, 결핵, 말라리아 등 3대 질병뿐만 아니라 림프사상충증과 같은 열대질환, 콜레라 등 수인성 질환 퇴치에 쓰이고 있다.
국제질병퇴치기금은 개도국 지원에만 그치는 게 아니라 우리 국민들의 건강을 지키는 데에도 기여하고 있다. 해외여행을 떠나는 국민의 수가 연간 3000만 명에 이르는 현실에서 지카 바이러스와 메르스 사태에서 보듯 감염병에는 국경이 없다. 해외여행길에 내는 1000원의 상당 부분은 결국 우리 국민들의 혜택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국제의약품구매기구는 의약품 가격 인하를 통한 보급에서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예를 들어 어린이용 에이즈 치료제는 수요가 적고 소비자들의 구매력도 낮아 고가 의약품이었지만, 국제의약품구매기구의 노력으로 기존 가격의 20% 수준까지 낮출 수 있었다. 에이즈에 걸린 50만 명의 아프리카 어린이들이 혜택을 보게 됐다. 이 기구는 2010년부터 의약품 특허목록(Medicine Patent Pool) 제도를 도입했다. 이 제도는 특허권이 없는 제약회사라도 일정한 사용료를 지불하면 복제약품을 생산해 약품 값을 낮출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정부는 이번 국제의약품구매기구 집행이사회에서 지난 12년 동안 기구를 지원한 국제질병퇴치기금의 역할과 미래 전략을 소개할 예정이다. 이와 함께 국내 제약회사들의 결핵, 말라리아 관련 제품을 소개하고 이들의 해외 진출을 지원할 계획이다. 이번 회의를 통해 해외여행객 한 사람이 납부하는 1000원이 세계 시민의 건강과 복리를 증진하고, 궁극적으로 우리 국민들의 건강을 지키고 있음을 되새기길 기대해 본다.
이태호 외교부 2차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