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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美, 이란의 유조선 공격 증거대라”… 아베 ‘빈손 외교’ 무마 나서

입력 | 2019-06-17 03:00:00

아베가 하메네이 만날때 피격
美주장 인정땐 중재외교 실패 자인… 내달 참의원 선거 악영향 우려
사우디-英, 美에 동조하며 이란 비난… 中-러-EU는 “이란 소행 증거 부족”




일본 정부가 13일 중동 오만해(海)에서 일어난 일본 관련 유조선 피격 주체가 이란이라는 미국의 주장을 수용하지 않고 구체적인 증거를 요구했다. 사건 직후 미 정부가 즉각 이란을 공격 주체로 지목한 것과 뚜렷한 시각차를 드러냈다. 다음 달 말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41년 만에 현직 총리로 이란을 방문해 외교 성과를 강조하려던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전략에 상당한 차질이 발생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 뚜렷한 미일 시각차

교도통신은 16일 “정부는 이란이 유조선을 공격했다는 미국의 설명에 설득력이 없다고 보고 있다. 미국에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전했다. 피격된 유조선 2척 중 1척인 ‘고쿠카 커레이저스’호의 운영사 고쿠카산교(國華産業)도 “일본 회사가 운영하는 유조선이란 것을 알기 어려웠을 테고 사전 공격 예고나 범행 후 성명도 없었다”며 일본이 표적이라 생각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미국이 일본의 요구에 응할지는 미지수다. 다만 이란 문제가 이달 말 오사카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맞춰 열리는 미일 정상회담에서도 주요 의제가 될 것으로 이 통신은 예상했다.

NHK에 따르면 아베 총리는 14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약 30분간 전화 통화를 하고 기자들에게 “일본은 어떠한 자가 공격을 했다고 해도 선박을 위험에 처하게 하는 행동을 단호히 비난한다”고만 했다. ‘공격 주체’ 언급은 없었다.

밀월을 과시하던 일본이 미국과 다른 목소리를 내는 이유는 아베 정권의 외교 실패 논란을 무마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유조선 피격은 아베 총리가 이란 테헤란에서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와 면담하던 시간에 일어났다. 당초 방문 목적인 미-이란 대화 중재를 성사시키지 못한 상황에서 이란이 그의 방문 기간에 일본 관련 유조선을 공격했다고 밝혀지면 외교 실패에 대한 거센 비판이 불가피하다. 교도통신은 15, 16일 양일간 전화 여론조사 결과, 아베 내각 지지율이 47.6%로 한 달 전보다 2.9%포인트 하락했다고 전했다. 마이니치는 “미국 주장대로 이란이 공격했다면 총리의 체면이 구겨진다”고 지적했다.

○ 엇갈린 국제사회의 반응

국제사회의 반응도 엇갈린다. 사우디아라비아, 영국 등은 미국 편에 섰다. AFP통신 등에 따르면 사우디 실권자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는 16일 “이란은 아베 총리의 외교적 노력에 유조선 공격으로 대응했다”며 이란을 비난했다. 제러미 헌트 영국 외교장관도 성명을 통해 “이란 혁명수비대가 두 유조선을 공격했다는 게 거의 확실하다”고 밝혔다.

반면 유럽연합(EU)은 미국이 공개한 동영상이 ‘이란 소행’임을 증명할 증거로 불충분하다며 중국, 러시아와 의견을 같이했다. 중국과 러시아는 “성급한 결론을 내리면 안 된다”며 미국과 이란 모두에 자제를 촉구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독립 기관의 진상조사를 요구했다. 이란은 미 중앙정보국(CIA)과 이스라엘 모사드의 합작 자작극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중동의 긴장은 점점 더 고조되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15일 사우디 주도의 수니파 아랍동맹군이 예멘 수도 사나의 군사기지 등을 공습했다고 전했다. 전일 예멘 시아파 반군 후티가 사우디 남부 공항을 드론으로 공격한 지 하루 만의 반격이다.

피격된 또 다른 유조선 ‘프런트 알타이르’호에 탔다가 현대상선 소속 ‘현대 두바이’호에 구조돼 이란으로 갔던 선원 23명은 15일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 도착한 후 각자 고국으로 귀국했다. 고쿠카 커레이저스호도 UAE 푸자이라 칼바 항구 근처로 이동해 정박했다. 두 배가 모두 UAE에 정박함에 따라 본격적인 사고 경위 조사도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카이로=서동일 dong@donga.com / 도쿄=박형준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