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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위보다 더 심한 벌을 받아서야[오늘과 내일/하임숙]

입력 | 2019-06-17 03:00:00

높아진 기준에 기업도 변신 중… 벌주기가 최종 목적이어선 안돼




하임숙 산업1부장

제철업계 근로자 여러 명에게 물었다. 충남도가 현대제철, 전남도와 경북도가 포스코의 고로(용광로) 브리더를 대기오염원으로 문제 삼아 10일간 조업중지 명령을 내리거나 사전통보한 데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말이다.

“한번 제철소들이 문을 닫고 철강재를 다 수입해 봐야 정신 차릴 건가. 자동차 조선 산업이 줄줄이 무너질 위험에 처해 봐야 알 건가.”

“해외 제철소를 몇 군데 가봤는데 우리만큼 깨끗하게 관리하는 회사들은 없었다.”

“환경을 확실히 지키는 방법이 있다. 대한민국 모든 공장을 문 닫게 하면 된다.”

그들은 매우 화가 나 있었다. 그러면서 산업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행정가가 기업에 미치는 영향이 너무 크다고 했다.

고로 브리더는 고로가 너무 뜨거워져 폭발하지 않도록 숨통을 열어주는 안전밸브다. 두 달에 한 번 정도 고로 내부 정비를 위해 새벽에 브리더를 여는 걸 환경단체들이 문제 삼자 지자체들이 조업중지 조치를 줄줄이 취하고 있다. 문제는 고로 가동 중단이 4, 5일만 넘어도 쇳물이 굳어 최대 6개월간 가동하지 못하게 된다는 점이다. 여기다 브리더에서 나오는 수증기에 오염물질이 매우 적을 가능성이 높다는 게 학계와 업계의 이야기다.

다행히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현재 기술 수준으로는 대안이 없고, 오염물질이 얼마나 배출되는지 분석이 안 된 상태에서 기업을 망하게 할 수 없다”며 입장을 전환했으나 충남도 측은 아직 기존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사실 기업의, 아니 인간의 모든 활동은 지구 환경을 파괴하는 방향으로 이뤄지고 있다. 음식을 먹는 행위는 소화, 배출되는 과정에서 이산화탄소를 발생시킨다. 샤워할 때, 옷을 입을 때, 자동차를 운전할 때, 심지어 숨 쉴 때조차 환경이 훼손된다. 상품을 만들기 위해 기계를 돌려야 하는 기업들이 생산 과정에서 오염물질을 배출하는 건 당연하다. 이 때문에 환경 문제는 따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산업과 공존을 모색해야 하는 문제다.

대중이 누리는 대량생산의 혜택이 환경 훼손의 위험보다 컸던 1, 2차 산업혁명 시대와 달리 요즘은 환경의 가치가 커지다 보니 환경을 덜 훼손하는 방향으로 산업 활동을 해보자는 공감대가 크다. 유럽연합(EU)이 자동차의 오염물질 배출 규제를 더 강화하고, 국제해사기구(IMO)가 내년 1월부터 선박 연료유의 황 함량을 크게 낮추기로 한 것도 이런 공감대에서 나왔다.

해외 기업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이런 기류를 감지하고, 곧바로 환경 규제를 돈을 벌 기회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제너럴일렉트릭(GE)의 전설적 경영자 제프리 이멀트 전 회장은 2005년부터 ‘그린 이즈 그린(Green is green·환경이 곧 달러라는 뜻)’이라는 구호를 외치며 친환경 경영을 시작했다. 우리나라 기업들은 대응이 좀 늦었다. 하지만 이미 국내외 규제가 현실화됐고, 친환경 제품이 아니면 지갑을 열지 않겠다는 소비자가 많아졌기 때문에 환경을 더 이상 리스크가 아닌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보려는 움직임이 커지고 있다. 동아일보가 올해 신년 기획으로 ‘환경이 미래다’ 시리즈를 통해 전국의 사업장들을 돌아보니 이미 기업들은 어떻게 하면 덜 유해한 물질로, 덜 유해한 방식으로, 덜 유해한 제품을 생산할지 고민하고 현장에 적용하고 있었다.

바뀌려는 마음이 있고, 바뀌려고 행동하고 있는 사람의 발을 묶어 버리는 건 해결책이 아니다. 무엇보다 모든 논의는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다 같이 더 나은 방향으로 나가자는 게 전제가 돼야지, 누군가를 벌주는 게 목적이 돼선 안 된다. 그런데 요즘 우리 기업들은 많은 경우 행위보다 더 심한 처벌의 대상이 됐다는 느낌을 받고 있다.

하임숙 산업1부장 arteme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