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진균 정치부 차장
후보들은 앞다퉈 ‘노무현’을 대표 경력에 넣었다. 수많은 관련 경력이 등장했다. 노무현 청와대 비서관·행정관은 물론이고, 노무현재단 ○○위원 등을 앞세운 후보가 줄을 이었다. 비문(비문재인) 진영은 속이 끓었지만 이의를 제기하기 힘들었다.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는 노무현재단 △△지역위원회 ○○위원 등 임명권자가 애매한 후보들까지 쏟아지자 당은 혼란에 빠졌다. 출마자들끼리 ‘친노 인증’을 두고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다. 2016년 총선 전 새누리당의 ‘진박 감별’ 논란과 비슷한 상황이었다. 논쟁 끝에 당은 정부와 재단이 공식 임명장을 수여한 직위만 인정하기로 했다. 그러자 ‘노무현재단 평생회원’을 내세운 후보가 등장했다. 평생회원 자격은 일정액 이상을 노무현재단에 기부하면 누구나 받을 수 있었다. 공식 임명장도 있었다. 당은 이를 경력으로 인정했다. 총선 6개월 전까지 ‘1당은 물론 과반도 가능하다’는 기대감에 부풀어 있던 민주당은 2012년 총선에서 패배했다.
예전 소동이 다시 떠오른 것은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에서 다시 ‘인증’ ‘감별’ 논쟁이 불거질 조짐이 보이기 때문이다. 40명 안팎의 현 청와대 출신 수석, 비서관, 행정관 등이 내년 총선 출사표를 던졌다. 인지도가 있는 몇몇을 제외한 신진 정치인들에게 문재인 청와대라는 ‘친문 인증’은 포기하기 힘든 카드다. 당내 경쟁자들은 “김대중 노무현 청와대 출신도 있다. 같은 민주당 정부다. 누구의 청와대라고 분류하는 것은 당내 계파 갈등만 키울 뿐”이라고 맞서고 있다. 민주당은 다음 달 1일 중앙위원회를 소집해 내년 총선 룰을 확정할 계획이다. 하지만 당 총선공천제도기획단은 경력에 특정인 이름을 넣는 것을 허용할지에 대한 결정을 보류했다. 연말 또는 내년 초 꾸려질 당 선거관리위원회의 판단에 맡기기로 했지만 갈등은 예고된 상황이다.
패권과 계파의 힘에 기대려 하는 정치인과 이를 활용하려는 권력은 늘 있게 마련이다. ‘계파 챙기기’와 ‘줄 세우기’는 현실 정치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반복돼왔다. 하지만 민심과 동떨어진 계파 정치와 세 불리기 정치는 민심의 역풍이라는 치명적 리스크를 내포하고 있다. ‘진박 감별’은 박근혜 정부의 몰락으로 이어졌다.
길진균 정치부 차장 le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