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인류 최고의 발명품’으로 불리던 플라스틱이 요즘 천덕꾸러기 신세다. 독일의 식료품점 오리기날 운페어팍트, 영국의 슈퍼마켓 언패키지드, 미국의 더 필러리 등 포장지를 사용하지 않는 매장들이 늘고 있다. 소비자들은 집에서 가져온 빈 병이나 빈 통에 곡물이나 커피 세제 샴푸 벌꿀 우유 등을 필요한 만큼 담아 계산대로 가져간다. 됫박으로 쌀을 사고 빈 병에 기름을 담고 우유병을 회수해 재활용하던 시절로 되돌아간 풍경이다. 종업원이 챙기지 않아도 소비자가 알아서 구매할 수 있는 첨단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는 점만이 다르다. 매장 한쪽에는 ‘포장지는 쓰레기’라는 문구가 붙었다.
▷석유에서 뽑아내 대량 사용한 지 70여 년. 편하고 가성비 좋은 소재로 각광 받던 플라스틱은 이제 생태계 파괴의 주범으로 떠올랐다. ‘생산에 5초, 쓰는 데 5분, 분해되는 데 500년 걸리는’ 특성 탓이다. 북태평양에서 발견된 폐플라스틱 더미로 이뤄진 섬, 인간이 버린 비닐봉지나 빨대 탓에 생명을 잃는 바다생물의 모습이 충격을 던져줬다. 미세먼지처럼 잘게 부서진 미세 플라스틱이 물과 어패류를 통해 인체에 유입돼 쌓인다는 점도 알려졌다. 세계자연기금(WWF)은 한 사람이 일주일간 신용카드 한 장(5g) 분량의 미세 플라스틱을 섭취하고 있다는 무서운 지적을 내놓았다.
▷글로벌리즘에 지쳐 보호주의 색채가 강해지는 세계에서, 쓰레기의 생산과 소비, 처리와 재활용은 가장 먼저 로컬 시대로 돌아가고 있다. 싸고 편리하면서 환경 부작용을 걱정할 필요 없는 대체재 개발에 대한 기대도 커져 간다. 그런 신물질이 나오기 전까지는 플라스틱으로부터 지구를 구할 유일한 길은 사용량을 줄이는 것이다. 지속 가능한 지구를 위해서도 소비의 속도를 줄여야 하는 시대다.
서영아 논설위원 sy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