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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의 역사가 궁금하면 나무에게 물어보라[시론/이돈구]

입력 | 2019-06-17 03:00:00


이돈구 서울대 명예교수·전 산림청장

요즘 우리가 살고 있는 아파트와 주택의 외관은 아름답다. 회색빛 콘크리트에서 벗어나 곳곳에 심어진 꽃과 나무는 도시 속에서도 농촌이나 숲에 살고 있는 것처럼 느끼게 한다. 이렇듯 깊은 산속에서 수십 년 넘게 살아온 큰 소나무를 서울 등 대도시에 비싼 값으로 옮겨 심고, 죽어가는 듯하면 영양주사를 줘서 살리려고 한다.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소나무는 본래 살던 곳에서 살아야 하고 공해에는 매우 약하다. 아파트나 건물의 조경을 위해 옮겨 심을 때 뿌리를 철사나 고무줄로 매어 놓은 채로 전신주처럼 땅에 꽂아 심은 것을 보면 불쌍하기 그지없다.

아파트 문화가 오기 전 우리들은 이웃을 만나면 서로 소식을 물으며 소통하고 지냈다. 마당의 장독대 옆에는 작약이나 목단 꽃이 소담스럽게 피었고, 올망졸망 엮인 사립이나 돌담에는 호박넝쿨이 담을 휘휘 감았다.

고릿적 옛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아파트 살이를 하면서 느낀 안타까운 것들 때문이다. 눈 호강을 시켜주는 여러 종의 꽃과 나무는 자연을 옮겨온 것이 아니라 살충제가 코팅된 안타까운 생명들이다. 관리사무소에 독한 살충제를 자주 뿌리지 말고 독성이 적은 친환경 살충제 사용을 제안했지만 이미 주민대표회의에서 결정됐고, 애벌레를 보면 아이들이 무서워한다고 항의가 들어와 안 된다고 한다.

하지만 애벌레가 있어야 식물생태계가 유지된다. 어떤 곤충은 꽃가루를 암술에 묻혀 열매를 만들어 주고, 어떤 곤충은 꿀을 모은다. 이런 곤충을 잡아먹기 위해 새들이 온다. 살충제를 뿌리면 애벌레가 없어져 곤충이 줄어들고, 새들의 개체수도 준다.

토양학자에 의하면 토양 1g 속에 수억에서 수십억 마리의 미생물이 뒤엉켜 살고 있는데, 이들이 농약에 의해 죽는다. 1962년에 출간된 레이철 카슨의 저서 ‘침묵의 봄’에서 지적했듯이 우리나라를 비롯한 부유한 국가들에서 과도한 농약 사용으로 곤충과 많은 생물이 사라져 조용한 봄을 맞이하고 있다.

19세기 산업혁명 이후 최근까지 경제발전에 집중하다 보니 환경오염을 미처 감안하지 못했다. 우리나라도 20세기 후반까지 먹을거리 자립을 위해 새로운 품종을 육성하고, 생산 증진을 막는 병과 해충을 방제하기 위해 농약을 살포했다. 논과 밭에 화학비료를 씀으로써 짧은 기간에 획기적으로 농작물 생산을 높인 ‘녹색 혁명’이 이뤄졌다. 1990년대에 이르러 단위 면적당 생산성 증진이 중요하지만 장기적으로는 단기간의 집약적인 생산 증진 방법보다 지속적인 생산이 더 효율적이라고 제안한 ‘지속농업(Sustainable Agriculture)’의 개념이 대두됐다. 특히 이 개념을 미국에서는 여성 이름과도 같은 ‘리사’(LISA·Less Input Sustainable Agriculture)라고 불렀는데, 이의 실효성은 우리나라와 같은 아시아 국가에서 이미 5000년 이상 벼농사를 계속해서 무탈하게 지어왔다는 사실로 증명된다.

이러한 지속가능의 개념이 우리 인간의 편익과 자연 보호의 절충점을 찾을 수 있는 열쇠라고 본다. 자연 보호의 개념이 막연하게 느껴지고 필요성에 의문이 간다면, 자연을 자원이라고 생각하고, 이 자원을 우리가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쓸 방법을 모색해보면 어떨까. 재생가능한 에너지원으로서 바이오매스를 활용하고, 이 바이오매스를 벼농사처럼 몇천 년 동안 지속적이고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해서는 자연자원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를 고민하면서 정책의 큰 틀을 설정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정책의 수립을 충실하게 따르는 실행이다. 예산만 낭비하는 주먹구구식의 사업은 지양하고, 신중하고 면밀한 계획을 수립하여 정확한 사업 추진과 관리가 필요하다.

독일에서 ‘지역의 역사가 궁금하면 나무에게 물어보라’는 말이 있다. 나무의 나이테에는 그 지역의 역사(가뭄, 산불, 홍수 등)가 생생히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도시 숲의 관리도 일반시설물을 관리하는 양태에서 벗어나 숲을 담당하는 기관이 큰 틀에서 전체적으로 총괄하고 전문적으로 책임 있게 관리해야 할 것이다.

최근 세계적으로 환경보호는 매우 중요한 이슈여서 일반인, 학자, 기업인, 정치인을 막론하고 모두에게 매우 중요하게 다루어지지만, 한편으로는 환경을 더욱 외면하는 것이 아닌지 걱정될 때가 있다. 산에 들어가 보면 사람이 도저히 다닐 수 없을 것 같은 첩첩산중의 산자락에도 어김없이 플라스틱 봉지와 알루미늄 캔이 나뒹굴고 있다.

인간이 불러온 기후변화 재앙과 그 재앙을 막기 위해 세계적으로 기울이고 있는 막대한 노력을 생각할 때 인간과 환경은 불가분의 관계다.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심 속 아파트와 주택단지부터 좀 더 환경친화적인 생각과 노력을 기울일 때가 아닌가 싶다. 정부도 우리의 자연을 우리 후손에게 물려주기 위한 정책의 마련과 실행에 더 세심한 노력을 기울여주길 바란다.

이돈구 서울대 명예교수·전 산림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