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어제 차기 검찰총장 후보자로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을 지명했다. 국회 인사청문이 있긴 하지만 임명은 국회 동의를 요하지 않는다. 윤 후보자가 임명되면 2021년 7월까지 2년간 총장직을 맡는다. 문 대통령이 집권 후반기에도 적폐청산 수사를 이어갈 뜻을 명확히 한 것으로 보인다.
검찰총장 인선에서는 개인적 수사 역량보다는 정치권력으로부터 검찰의 독립을 지킬 자세와 용기가 가장 중요하다. 거기에 더해 이번에 임명되는 검찰총장은 검경 수사권 조정 같은 큰 변화를 역사적 혜안을 갖고 풀어갈 역량까지 요구된다. 그러나 문 대통령의 인선은 정권 어젠다를 강하게 뒷받침할 수 있는 인물을 고르는 데 우선점을 둔 것으로 해석된다.
윤 후보자가 지휘한 ‘적폐 청산 수사’로 그동안 기소된 사람이 박근혜·이명박 전 대통령과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 120명이 넘는다. 박근혜 정권의 청와대 핵심 참모와 장관, 국가정보원 검찰 경찰 등의 기관장 중에서는 같은 식구인 전 검찰총장 정도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기소된 셈이다.
문 대통령은 2017년 고검장급이던 서울중앙지검장을 검사장급으로 낮춰 전임보다 다섯 기수 아래인 당시 고검 검사 신분의 윤 후보자를 파격적으로 지검장에 임명했다. 이번에 다시 문 총장보다 다섯 기수 아래로 고검장도 거치지 않은 그를 총장에 지명했다. 검찰 관행대로라면 윤 후보자 동기인 사법연수원 출신 23기까지 검사장급 이상 간부 30명이 옷을 벗어야 한다. 동기들 9명은 남는다고 하더라도 21명이 교체된다. 검찰 조직이 크게 동요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경직된 기수문화는 넘어서야 하지만 기수를 아예 무시한 검찰 인사는 줄 세우기의 또 다른 폐단을 낳을 수 있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적폐청산 수사를 마무리하고 국민 통합으로 나가야 한다는 사회 원로들의 충고에도 “반(反)헌법적인 것이기에 타협이 쉽지 않다”는 말로 단칼에 거부했다. 적폐 청산에 계속 매달리고 있으나 청산의 지속이 나라의 미래를 위해 더 이상 무슨 도움을 줄지는 많은 이들에게 의문으로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