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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정윤철]그들은 끝까지 한 팀이었다

입력 | 2019-06-18 03:00:00


김정민을 안아주고 있는 정정용 감독.

정윤철 스포츠부 기자

“저기 모인 분들이 전부 팬이야? 대박이다!”

평일 한낮의 뜨거운 햇볕 아래서도 ‘덕분에 행복했어요’ ‘누나가 많이 아낀다’ 등의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자신들을 기다리는 환영 인파를 본 20세 이하 축구대표팀 선수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대한축구협회가 17일 서울광장에서 주최한 20세 이하 대표팀 환영행사는 ‘축제의 장’이었다. 1000여 명의 팬들이 한국 남자 축구 사상 국제축구연맹(FIFA) 주관대회 최고 성적(준우승)을 달성한 선수들을 보기 위해 행사장을 찾았다.

지난달 5일 대회가 열리는 폴란드로 출국할 당시 공항을 찾은 팬들은 20여 명에 불과했다. 하지만 “우리가 잘하면 관심은 자연스럽게 따라올 것이라 믿었다”는 조영욱(FC서울)의 말처럼 선수들은 스스로의 힘으로 팬들의 관심을 이끌어냈고 ‘황금 세대’라는 찬사까지 들었다.

행사장을 찾은 전해옥 씨(65·여)는 “손자뻘인 아이들이 당차게 세계무대를 누비는 모습이 감동스러웠다. 언젠가 내 손자도 저렇게 한계를 넘어서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박민호 씨(36)는 “동생들이 중압감을 즐거움으로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면서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는 진리를 다시 한번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

열렬한 환영 분위기에도 굳은 표정을 짓는 선수가 있었다. 1-3으로 패한 우크라이나와의 결승전에서 부진했던 탓에 무수한 악성 댓글에 시달린 김정민(FC리퍼링)이었다. 도를 넘은 비난이라는 지적도 있었다. 그만큼 마음고생이 심했을 상황이었다.

하지만 ‘원팀 정정용호’는 끝까지 동료애를 잃지 않았다. 주장 황태현(안산)은 “승패는 모두 팀이 함께 만들어낸 결과다. 비난보다는 비판을, 비판보다는 격려와 응원을 해주신다면 한국 축구가 더 높은 곳에서 더 높은 꿈을 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정용 대표팀 감독도 제자의 상처를 감싸기 위해 애썼다. 정 감독은 “선수들은 아직 청소년이다. 비난과 비판은 나에게 해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김정민이 호명되자 광장을 찾은 팬들은 야유가 아닌 박수와 함성으로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김정민은 “동료들이 힘들겠지만 포기하지 말고 자신 있게 하라는 말을 해줬다. 팬들의 환영을 받으니 조금은 마음이 편해진 것 같다. 이제는 환하게 웃을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들뜨기 쉬운 환영 행사장에서도 마지막까지 동료를 배려하는 마음을 잃지 않은 선수단, 그런 선수단과 함께 아낌없는 격려의 박수를 보낸 팬들. 다소 굳은 표정으로 입장했지만 행사장을 떠나는 김정민의 얼굴에도 미소가 번졌다.
 
정윤철 스포츠부 기자 trigg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