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재란때 日 끌려간 도공의 후예 1998년 남원서 채취한 불씨 가져가 일본의 흙과 기술로 도자기 빚어 일민미술관서 귀향展 여는 등 한일문화 가교 역할에 큰 공헌
일본에서 400여 년간 도자기를 빚어 온 심수관 가문의 제14대 심수관의 생전 모습. 그는 도자기를 통해 한일문화의 가교 역할을 했다. 아사히신문 제공
그는 1598년 정유재란 때 조선에서 끌려온 심당길의 14대손이다. 심수관가(家)는 사쓰마(현 가고시마)번에 소속돼 사족(士族·사무라이) 대접을 받으며 대대손손 도자기를 빚어왔다. 400여 년간 심수관가가 빚어온 ‘사쓰마야키(薩摩燒)’는 일본 도자기의 대명사가 됐다. 가고시마현 전통의 유리세공을 배워 투명감을 낳는 새로운 기법도 탄생시켰다고 요미우리신문은 평가했다.
메이지유신 때 가업을 빛낸 12대 심수관의 업적을 기려 이후 자손들이 그 이름을 계승하고 있다. 고인은 1964년 14대 심수관이 됐다. 1999년 장남 가즈데루(一輝·60) 씨를 15대 심수관으로 습명(襲名·선대의 이름을 계승)했다.
고인은 조선 도공의 망향을 다룬 시바 료타로(司馬遼太郞)의 1964년 작 소설 ‘고향을 어찌 잊으리’를 통해 일본 내에서도 널리 알려졌다. 그는 소설의 주인공이었다.
동아일보가 2017년 11월 고인을 인터뷰했을 때 그는 부친의 유언을 지킨 것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했다. 아버지 13대 심수관은 교토(京都)대 법학부를 졸업한 뒤 도공의 삶을 이어갔다. 아버지가 1964년 세상을 뜨며 남긴 유언은 “1998년이면 이곳에 온 지 400주년이다. 그때를 잘 부탁한다”라는 말이었다.
고인은 ‘조선의 불씨’를 가고시마현 미야마에 가져왔다. 1998년 남원에서 채취한 불씨를 가져와 일본의 흙과 기술로 도기를 빚었다. 그때 가져온 불씨는 지금도 미야마에서 이어지고 있다.
또 하나는 귀향 전시회였다. 단 한 번도 가고시마를 벗어난 적이 없던 수장고의 도자기들은 1998년 7월 동아일보 일민미술관에서 열린 첫 해외 전시회에서 소개됐다. 당시 ‘400년 만의 귀향―일본 속에 꽃피운 심수관가(家) 도예전’은 약 5주간 이어졌고, 5만여 명이 관람하며 성황을 이뤘다.
장례식장은 가고시마현 가고시마시에 있는 요시다 소사이(吉田葬祭)다. 장례식은 19일 오전 11시에 열린다.
도쿄=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