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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난민신청 이유 설명 막고… 하지도 않은 문답 적은뒤 서명 요구

입력 | 2019-06-18 03:00:00

출입국관리소 직원들 면접조서 조작




2016년 8월 서울 양천구에 있는 서울출입국·외국인청 면접조사실. 법무부 소속 난민 면접관이 아랍어 통역사와 함께 이집트 출신의 30대 남성 B 씨와 마주 앉았다. B 씨가 난민 신청을 하려는 이유를 아랍어로 설명하려 하자 면접관은 통역을 거쳐 말했다. “똑바로 앉으세요.” 그러고 나서 면접관은 B 씨에게 별다른 질문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면접관은 B 씨의 난민 신청서를 컴퓨터 옆에 놓고 마치 질문과 대답이 오간 것처럼 조서를 작성했다.

면접관이 조서에 기재한 내용은 B 씨가 신청서에 쓴 것과 달랐다. B 씨는 신청서에 ‘이집트에서 쿠데타에 반대하는 시위를 했기 때문에 돌아가면 체포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런데 면접관은 ‘돈을 벌기 위해 한국에 왔다’고 조서에 적었다. 심지어 면접조서에는 ‘(B 씨가 쓴) 난민 신청 사유는 인터넷에서 본 내용을 적은 것’이라는 내용도 담겼다. B 씨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 또 ‘해외에 있는 큰형을 한국으로 불러 함께 일하고 싶다’는 내용도 조서에 포함됐다. B 씨는 신청서에 ‘쌍둥이 동생이 있다’고 썼다. B 씨는 형이 없다. 난민법 9조에는 ‘법무부 장관은 난민 신청자에게 유리한 자료도 적극적으로 수집해 심사 자료로 활용해야 한다’고 돼 있다. 하지만 이 면접관은 오히려 신청자에게 불리한 내용을, 그것도 허위 사실을 면접조서에 기재한 것이다.

별다른 질문을 하지 않던 면접관은 조서 작성을 마친 뒤 B 씨에게 종이 한 장을 건네며 자필 서명을 요구했다. 종이에는 ‘면담 기록이 본인 진술과 일치한다는 것을 통역을 통해 확인했다’는 내용이 아랍어로 적혀 있었다. 난민법상 신청자가 알 수 있는 언어로 조서 내용을 통역 또는 번역해 확인토록 해야 하지만 면접관은 이 절차도 지키지 않았다. B 씨는 별 의심 없이 서명했다. B 씨는 “당시 면접관이 신청서를 보면서 조서를 작성했기 때문에 허위로 작성할 거라곤 상상도 못 했다”고 했다. 결국 B 씨는 난민 지위를 인정받지 못했다.

법무부 자체 조사 결과 B 씨처럼 면접조서가 허위 기재돼 난민 신청이 기각된 신청자가 최소 57명인 것으로 파악됐다. 법무부는 이들 중 55명에 대해 면접조서 작성 과정의 절차적 하자를 인정하고 지난해 ‘난민 불인정 결정’을 취소했다. ‘난민 신청 기각’을 없던 것으로 했다는 것이지 난민으로 인정한 것은 아니다. 나머지 2명은 직접 행정소송을 제기해 “난민 불인정 처분 취소” 판결을 받아냈다. 이들 57명 가운데 2명은 법무부의 재조사를 통해 난민으로 인정받았다.

법무부 관계자는 소속 공무원들이 면접조서를 허위 기재한 경위에 대해 “국가인원위원회의 조사와 관련 소송이 진행 중이기 때문에 답변할 수 없다”고 밝혔다. 난민인권센터는 18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에서 ‘법무부 난민 면접 조작사건 피해자 증언대회’를 열고 면접조서 허위 기재로 인한 신청자들의 피해 실태를 알릴 예정이다.

박상준 기자 speaku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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