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경기 고양시 전기자재 제조업체인 ‘태건비에프’ 작업장에서 장애인 직원들이 콘센트함에 들어갈 부품을 조립하고 있다. 장애인 표준사업장 인증을 받은 이 기업은 전체 직원 102명 중 절반인 51명이 지적, 지체, 자폐, 청각 장애 등을 가진 장애인이다. 고양=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태건비에프는 2015년 12월 한국장애인고용공단으로부터 ‘장애인 표준사업장’ 인증을 받은 기업이다. 장애인 표준사업장이란 10명 이상의 장애인을 고용하고 편의시설을 갖춘 사업장이다. 정부는 장애인 표준사업장에 부대·편의시설 설치와 출퇴근용 차량 구입 등에 최대 10억 원을 지원한다. 지원을 받은 기업은 약정한 인원만큼 장애인을 고용하고, 최소 7년 동안 유지해야 한다. 노동시장의 대표적 취약계층인 장애인이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제도적 뒷받침을 하고 있는 셈이다.
○ 장애물 없는 근로환경에서 최저임금 이상 지급
원래 태건상사였던 이 기업은 올해 1월 태건비에프로 사명을 바꿨다. 장애인고용공단에서 ‘장애물 없는 생활환경(Barrier Free)’ 인증을 받으면서, 약자인 BF를 사명에 넣은 것이다. 사명처럼 지난해 11월 45억 원을 들여 완공한 신축 사옥은 장애인들이 일하기 편한 환경을 만드는 데 방점을 뒀다. 모든 문을 자동문으로 만들어 휠체어를 탄 사람도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 문 열림 버튼은 성인 허리 높이에 달려 있다. 정문에서부터 1층 출입구에 이르는 길과 화장실 입구 등에 턱이 없어 넘어질 염려도 없었다.
1∼3층 작업장은 한눈에 보기에도 공간이 널찍했다. 휠체어를 탄 직원이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데 무리가 없었다. 김 대표는 “자폐 장애를 가진 직원은 좁은 공간에서 일을 하면 불안해할 수 있다”며 “작업 공간을 밝고 여유롭게 만든 이유”라고 설명했다.
현행법상 근로능력이 비장애인의 70% 이하 판정을 받은 장애인은 최저임금 적용 대상에서 제외할 수 있다. 하지만 표준사업장 인증을 받은 기업은 모든 장애인에게 최저임금 이상을 지급하고 있다. 장애인 입장에선 표준사업장만 한 근로조건이 없는 셈이다.
당연히 장애인 직원들의 근무 만족도는 매우 높다. 콘센트 조립을 담당하는 지적장애인 이형주 씨(24)는 “작업 자체가 재밌는 데다 돈을 벌어 부모님을 드릴 수 있어 기쁘다”고 말했다. 자폐장애인 김석진 씨(21)는 “첫 직장인데 앞으로도 계속 열심히 회사 생활을 하고 싶다”며 작업장에 온 김 대표와 하이파이브를 한 뒤 웃었다.
○ 아직은 갈 길이 먼 장애인 표준사업장
태건비에프와 같은 장애인 표준사업장은 전국에 342곳이 있다. 이곳에서 일하는 장애인은 모두 8069명이다. 고용노동부는 최근 장애인 표준사업장 설립지원 대상 기업 65곳을 새롭게 선정했다. 지난해 47곳보다 지원 규모가 늘었다. 올해 장애인 표준사업장 지원에 배정된 예산은 약 171억 원이다. 고용부는 이번 지원으로 장애인 일자리 481개가 새롭게 생길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장애인을 직접 고용하기 어려운 기업은 별도의 자회사를 만들어 장애인을 고용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의 카페 ‘행복키움’, 호텔롯데의 청소업체 ‘스마일위드’ 등 9개 기업은 자회사형 표준사업장으로 새롭게 선정돼 예산 지원을 받게 됐다.
고용부는 또 3년 안에 표준사업장 인증을 받는다는 전제로 사회적경제 기업을 만드는 사업주에게 창업 자금 5000만 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표준사업장 설립을 활성화하기 위한 조치다.
이 때문에 장애인 인식 개선과 직무 개발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 대표는 “장애인이 왔을 때 거부하지 않고 같이 일할 수 있는 인식부터 만드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고용부 관계자는 “장애인도 충분히 할 수 있는 다양한 일자리를 만들고, 이를 제대로 매칭하는 게 장애인 고용률을 높이기 위한 과제”라고 말했다.
고양=박은서 기자 clu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