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이 음습한 공작 통해 서울중앙지검장 앉힌 윤석열 검찰총장도 다른 선택 없어… 적폐수사로 묶인 공동체 흥해도 함께 흥하고 망해도 함께 망한다
송평인 논설위원
문무일이 먼저 총장에 임명되고 총장의 의견을 들어 윤석열이 서울중앙지검장에 임명된 게 아니라 윤석열이 먼저 임명되고 그 뒤에 문 총장이 임명됐다. 청와대는 뒤바뀐 순서를 통해 검사들에게 검찰의 실권이 누구에게 있는지 명확히 보여줬다.
직전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이 당시 법무부 검찰국장과 같이 밥을 먹고 관행대로 서로의 부하직원들에게 격려금을 준 일이 느닷없이 친정부 언론에 보도되고 다음 날로 이영렬이 경질됐다. 음습한 공작의 냄새가 풍겼다. 그런 공작의 결과 윤석열이 먼저 서울중앙지검장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청와대는 그를 앉히기 위해 고검장급이던 서울중앙지검장 자리를 검사장급으로 낮추는 위인설급(爲人設級)의 일까지 벌였다.
문 총장은 내가 검찰에 출입하며 상대한 평검사들 중 마지막 남은 검사다. 그 아래 기수로는 거의 안면이 없다. 윤석열을 알지 못하나 그에 대해서는 그가 중앙수사부 검사이던 시절 함께 식사 자리에 동석했던 사람으로부터 들은 얘기가 있다. 윤석열이 “죄 없는 사람 데려다 죄 있는 사람으로 만드는 곳이 중수부”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중수부 검사 출신으로 대법관을 지낸 분에게 윤석열이 그런 말을 했다고 하자 이 사람 발끈했다. 내가 중수부를 모욕한다고 느꼈던 모양이다. 다른 기회에 검찰총장을 지낸 분에게 윤석열이 그런 말을 했다고 하자 이분은 “처음부터 죄 있다고 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라며 담백하게 받아넘겼다. 좋게 말하면 그런 뜻이었을 게다.
죄 없는 사람을 죄 있는 사람으로 만들려면 못된 수사 기법이 동원되기도 한다. 검찰에서 가족같이 지낸 사람의 잘못을 불어놓고 재판에 증인으로 나오길 주저할 때는 법이 금지하는 유죄협상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환부만 도려내는 외과 수술식 수사’에 대한 강조는 사라지고 곳곳에서 저인망식 별건(別件) 수사가 벌어지고 있다. 수사관이 표적 기업에 상주하다시피 하면서 자료를 뒤진다. 기업에는 걸면 걸리는 혐의가 많다. 그런 혐의를 피하기 위해 자료를 감추면 이번에는 증거인멸을 했다고 팬다. 그런 것으로도 안 되면 오랜 관행을 비리로 둔갑시키면 된다. 그렇게 모으고 모아서 당사자조차 놀랄 정도의 많은 혐의와 두꺼운 공소장을 만들어낸다. 이것이 ‘윤석열과 그 키즈(Kids)’의 수사방식이다.
덩치 큰 사람들이 오히려 성격이 여리다고, 윤석열이 독한 게 아니라 그 밑에 과거 노무현 청와대에서 일해 청와대와의 교감에 능한 정치참모 역할의 검사 하나와 누구의 말처럼 ‘한 편의 소설’같이 공소장을 제작하는 데 능한 수사기계 역할의 검사 하나가 있다는 얘기도 있다. 윤석열은 국가정보원 댓글 수사와 관련해 윗사람을 치받고 성공한 전력 때문에 그들이 이렇게 해야 한다고 하면 거부하지도 못한다고 한다. 그렇게 떠밀리듯 지금의 자리에 와 있다는 평가도 있다.
문무일 검찰은 실은 제1기 윤석열 검찰이었다. 앞으로 시작되는 것은 제2기 윤석열 검찰일 뿐이다. 윤석열이 양날의 칼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 혹은 기대는 접으시라. 문재인-윤석열은 한 배를 탔다. 그들은 적폐청산 수사로 인해 운명 공동체로 엮였다. 흥해도 같이 흥하고 망해도 같이 망한다. 권력으로부터 검찰의 독립은 사치스러운 말이 되고 지금은 씨알도 먹힐 여지가 없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