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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책임한 대출 관행, 이제 바뀐다[기고/손병두]

입력 | 2019-06-19 03:00:00


손병두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독일어 ‘슐트(schuld·책임)’는 빚(debt)과 죄(sin)라는 뜻을 모두 지니고 있다. 부채가 도덕적으로 정당치 못하다는 인식이 반영된 결과다. 그러나 산업과 금융이 발달하면서 부채는 하나의 금융상품이 되었다. 소비 확산과 총수요 증대를 위해 부채가 필요할 때도 있다. 부채는 경제를 움직이는 필수불가결한 요소가 된 것이다. 때때로 채무자의 오판과 채권자의 과욕이 맞물려 과도한 부채가 만연해지기도 했다. 과잉부채는 금융시스템과 경제 안정까지 위협할 수 있다. 2008년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대표적인 예다. 우리도 2000년대 초반 신용카드를 남발해 카드 위기를 겪은 바 있다.

이에 과잉부채에 대한 책임이 채권자에게도 존재한다는 방향으로 관점이 변화하고 있다. 금융회사가 ‘책임 있는 대출’을 취급해야 한다는 인식이 국제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영국은 금융회사가 차주의 채무 부담능력을 점검하도록 규율체계를 정비하고 있다. 미국은 약탈적 속성을 지닌 대출을 제한했다. 차주를 보호하면서 금융 불안정을 예방하려는 노력의 산물이다. 책임 있는 대출 취급의 첫 단추는 상환능력 확인이다. 우리는 가계대출 상환능력 심사가 충분치 못하다. 제2금융권 가계대출의 20%가 소득심사를 거치지 않거나 형식적으로만 소득을 확인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정부는 금융회사의 행태 변화를 유도해 왔다. 그 핵심이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도입이다.

DSR는 원리금상환액을 소득의 일정비율 이내로 유지하는 장치다. 은행권은 작년 10월부터, 제2금융권은 6월 17일부터 DSR를 시행했다. 제2금융권 DSR 도입은 손쉽게 과잉대출을 취급해 왔던 관행을 쇄신해 가계부채로 인한 위기의 소지를 낮출 것이다. 실제로 은행권은 DSR 도입 이후 소득증빙을 거친 대출 비중이 늘어나고 소득에 비해 과도한 대출 취급은 줄어들었다. 제2금융권에 DSR가 시행되면 소득증빙이 쉽지 않은 농·어업인 등의 대출신청이 까다로워질 수 있다는 지적이 있다. 대출받기 어려워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정부는 제2금융권 차주의 금융 문턱이 과도하게 높아지지 않도록 DSR를 합리적으로 운영할 것이다. 소득인정 범위는 넓히고, 부채산정 범위는 신축적으로 조정했다. 서민들이 주로 이용하는 서민금융상품, 소액대출, 전세대출 등은 DSR를 적용하지 않는다. 서민금융 지원도 한층 더 강화할 것이다. 2019년 중 최대 8조 원의 서민금융자금을 공급하고 지원체계를 개편해 나가겠다. 채무자의 권익은 보다 단단하게 보호해 나가겠다. 맞춤형 채무조정을 강화하고 과잉추심을 방지하는 한편 불법 사금융에는 관용 없이 엄정히 대응할 것이다.

세계은행은 미국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이 2004년 소득증빙 없는 대출을 취급하기 시작한 것이 글로벌 금융위기를 증폭시킨 요인이라 지적한다. DSR는 소득증빙, 상환능력 심사를 강화해 책임 있는 대출 관행을 형성하기 위한 조치다. 과도한 빚으로 어려움을 겪는 경우를 예방하는 동시에 금융시스템과 경제 안정을 유지하는 안전장치가 될 것이다. DSR 도입을 계기로 갚을 수 있는 만큼 대출이 이루어지는 시장규율이 자리 잡길 바란다.

손병두 금융위원회 부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