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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환익 “급격한 탈원전도, 경제성만 보는 원전 지상주의도 안 된다”[논설위원 파워 인터뷰]

입력 | 2019-06-19 03:00:00

조환익 前 한전 사장




조환익 전 한전 사장은 “정보기술(IT)을 이용한 에너지 절감 솔루션을 발전시키고, 미래 에너지 기술에 투자하려면 한전과 7만여 개 관련 기업의 에너지 산업 생태계가 활성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동주 기자 zoo@donga.com

신연수 논설위원

에너지 분야는 조용한 날이 드물었지만 요즘 특히 논란이 많다. 원전을 둘러싼 논란에다 전기요금 누진제 논란, 한국전력공사의 적자 논란까지…. 전기는 국민 생활과 경제에 필수적인 데다가 한전은 국내 유일한 전기공급 회사여서 이런 논란은 남의 일이 아니다. 조환익 전 한전 사장이 재직했던 2012∼2017년 한전은 연간 10조 원의 이익을 내고 주가도 높았다. 조 전 사장을 17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개인사무실에서 만나 최근 에너지 정책에 대한 의견을 들었다.

한국 전기요금 너무 싼 편이다

―한전이 또 엄청난 적자를 냈다. 조 사장 재직시절에는 큰 흑자를 냈는데 이렇게 달라진 이유가 뭔가.

“한전은 근본적으로 적자에 취약한 구조다. 수입을 대부분 전기요금에 의존하는데 전기요금을 올리는 것은 정말 어렵고 비용은 점점 높아진다. 내가 사장이던 시절은 이례적인 상황이었다. 전기요금을 두 번에 걸쳐 11% 올렸다. 정권 말과 초기에 언론과 시민단체들이 많이 도와줘서 올릴 수 있었다. 또 국제유가와 석탄가가 안정세였고 아랍에미리트에서 원전 건설비가 들어오는 등 여러 호재가 겹쳤다. 지금 여건은 다 그때의 반대라고 보면 된다.”

―한전 적자가 탈원전 때문이라는 지적이 있다.

“작년에는 원전 가동률이 낮았지만 올해는 원전 가동률이 많이 올랐다. 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한 보조금에 1조 원 이상의 추가 부담이 생겼을 것이다. 이것을 전부 한전이 보전하게 해서 그렇다. 화력발전의 원료가 되는 액화천연가스(LNG) 가격도 오르는 등 다양한 원인이 적자를 불렀다.”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전기요금의 3.7%인 전력기반기금이 항상 남아돈다. 공익 목적이면 이것을 활용해야지 한전에 다 떠안기면 안 된다. 태양광도 현재는 소규모 사업장에 보조금을 더 많이 주고 있는데 재생에너지인증(REC) 운영체계를 바꿔 대규모 사업장 중심으로 효율성을 높이고 난개발도 막아야 한다. 한국가스공사가 천연가스를 수입하는데 고통을 분담해서 한전의 적자를 줄여야 한다. 근본적으로는 전기요금 체계를 조정해야 한다.”

―천연가스나 석탄 가격에 전기요금을 연동시키는 ‘연료비 연동제’를 하자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한전은 연료비가 낮을 때는 전기요금을 안 낮추고 연료비가 높을 때만 연동제를 주장한다. 조 사장 시절에도 이익을 많이 냈고 연료비가 낮았지만 요금을 오히려 올렸다.

“한국의 전기요금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저 수준이었다. 더 낮추는 것은 자원의 효율적 사용을 위해 좋지 않다. 가족 네 명이 한 달에 20만∼40만 원 쓰는 통신요금과 비교해보라. 전기요금이 너무 싸다. 한전의 이익은 부채 상환과 미래를 위한 투자에 써야 한다.”

―한전을 비롯한 공기업들의 방만한 경영으로 전기요금을 더 내릴 수 있는데 못 내리는 것 아닌가.

“한전은 1년 중 하루도 감사기관의 감사나 조사를 안 받는 날이 없다고 할 정도로 이중 삼중으로 감시를 받는다. 한전을 비롯한 공기업들이 방만 경영을 할 요소는 매우 적다고 본다.”

―현재 발전(發電) 회사는 여러 개지만 전기를 판매하는 회사는 한전 하나다. 판매 독점을 깨고 경쟁을 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공기업 한전의 판매독점이 전기료 안정에 기여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일부 민간 부문의 참여를 위해 어느 정도 개방하는 것은 필요하다. 통신기업들이 관심을 갖고 있을 것이다.”

―원전을 둘러싼 사회적 논란이 심하다. 각자 진영 논리로 유리한 것만 얘기하니 종합적인 진실이 뭔지 모르겠다는 의견이 많다.

“원전이 위험해서 안 된다는 의견에는 반대한다. 특히 한국 원전은 안전과 기술에서 세계 최고 수준이다. 아랍에미리트 사막의 모래폭풍 속에서 원전을 건설하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모래 먼지 하나만 들어가도 원전이 멈춘다. 그걸 한국이 세계 최초로 했다. 원전 정책은 나라마다 다르다. 유럽을 중심으로 선진국들은 대체로 원전을 감축하고 있다. 원전을 늘리는 나라는 중국 러시아 등 개발도상국들이 대부분이다. 한국도 상대적으로 원전 비중이 크므로 점진적으로 축소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수출시장 공략을 위해 세계 제1의 기술 수준과 인력, 자재 등 원전 생태계는 유지해야 한다. 정부도 이런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으로 알고 있다.”

원전생태계 유지해야 수출도 활기

―원전이 생산하는 전기 가격에 사회적 갈등 비용이 포함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있다.

“산업자원부 차관 시절에는 방사성폐기물처분장 선정 문제로, 한전 사장 시절에는 밀양 송전탑 문제로 갈등 현장을 쫓아다니면서 생명의 위협까지 느꼈다. 경제성만 강조하는 ‘원전 지상주의자들’은 방폐장 건설에 더 많은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고리 1호기를 비롯해 사용후 핵연료 임시 저장고가 다 차가고 있다. 방폐장을 만들지 못하고 원전만 만들면 ‘화장실 없는 아파트’를 짓는 것과 같다. 또 원전은 멀리서 전기를 보내야 하기 때문에 밀양 송전탑처럼 76만5000V의 초고전압을 송전해야 한다. 이런 초고압 송전탑을 또 만들 수 있을는지…. 앞으로는 사회적 갈등 비용과 환경 비용이 점점 더 커질 것이다.”

―원전에서 사용한 옷 같은 저준위 방폐장을 만드는 데도 전북 부안에서 폭력사태까지 낳았다. 사용후 핵연료를 저장할 고준위 방폐장은 수십 년 동안 부지 선정도 못 했다.


“정부가 결단해야지 공론화가 만능이 아니다. 정부가 현명한 판단을 해서 오피니언 리더들을 설득해야지 공론화해 버리면 갈등만 커지고 방폐장 부지 선정이 어려울 것이다.”

―유럽 선진국들은 재생에너지 쪽으로 가고 있는데 아직 원전에 비해 전기의 안정성이나 가격이 문제인 듯하다.


“유럽에서는 환경에 대한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최근 ‘RE100’이라고 글로벌 기업들은 100% 재생에너지만 사용해서 제품을 만들겠다고 한다. 녹색금융(Green Finance)이라고 친환경 기업에만 투자하기도 한다. 유럽은 경제적 부담이 크더라도 재생에너지로 가겠다는 국민적 컨센서스가 어느 정도 이뤄진 듯하다.”

방폐장 선정 공론화, 갈등만 커져

―재생에너지가 오히려 환경을 파괴한다는 지적도 있다.

“한국은 재생에너지 비율이 7%로 너무 낮고 수준도 낮다. 재생에너지 비율을 올리기 위한 제도적 지원과 함께 난개발을 막는 종합정책이 필요하다. 또한 에너지정책을 지금까지의 공급 위주에서 수요 위주로 전환해야 한다. 전국 900만 개 전주를 사물인터넷(IoT)으로 연결하는 등 에너지절감 솔루션을 만들면 전기 사용을 20∼30% 줄일 수 있고 그러면 전력 문제는 상당부분 해소된다.”

―정부가 최근 2040년까지의 제3차 에너지기본계획을 내놨다.

“에너지정책은 정치 경제 사회 외교 등 국가의 모든 정책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종합적이고 균형적 시각 없이 한 가지만 강조하면 풍선효과를 낳는다. 원전을 줄이면 석탄이 늘어나는 식이다. 에너지정책은 7차 방정식과 같다. 한국 사람들은 고품질 저가격의 전기에 익숙해서 1초라도 정전이 되면 큰일 난다. 첫째, 전력수급이 안정되면서 둘째, 전기요금은 저렴해야 하고 셋째, 세계적인 기후변화에도 대응해야 하고 넷째, 원전 해외수출은 계속해야 하고 다섯째, 사회적 갈등도 줄여야 하고 여섯째, 4차 산업혁명과 미래에너지를 준비해야 하고 일곱째, 한전과 생태계의 건강함도 유지해야 한다.”

―한전과 에너지 생태계 유지가 왜 중요한가.

“정부 여당이 공기업 적자를 너무 가볍게 생각하는 게 아닌가 싶다. 언젠가 정부가 메워주면 되겠지 하는데 그러다간 에너지 생태계가 무너진다. 한전과 연관된 기업이 7만여 개나 된다. 미래에도 전기를 안정적으로 공급하고, 급변하는 미래에너지 산업에 대비하려면 한전이 중심이 돼 미래 기술과 산업에 투자하고 에너지시장을 활성화해야 한다. 한전 경영 정상화가 해결의 시작이다.”

미래 에너지기술-산업에 투자를

―유럽에서는 나라들끼리 전기를 주고받는데 동아시아만 못 하고 있다.

“한국도 중국 러시아 일본과 동북아 슈퍼그리드(Super Grid)를 추진해왔다. 몽골의 전기 판매가격이 kWh당 2센트고 한국은 8∼9센트, 일본은 14센트다. 한국은 어차피 전기를 만드는 연료의 97%를 수입하는데 전기를 직접 수입하는 게 더 싸다. 몽골 사막에서 태양광으로 만든 전기를 한국에 들여와 우리도 쓰고 일본에 팔면 한국은 무조건 이익이다. 수요의 일부를 수입하자는 것이고 백업이나 예비율 용도로도 전기 수입은 필요하다. 일본의 손정의 소프트뱅크 대표도 전기 수입에 적극적이다. 동북아 슈퍼그리드는 동북아 안보와 평화에도 큰 기여를 할 것이다. 추진하려면 미중 관계가 관건이겠지만….”

신연수 논설위원 yssh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