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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쑤! 마지막 예기에게 바치는 신명 한판

입력 | 2019-06-19 03:00:00

연희단 팔산대의 ‘몌별 해어화’ 20, 21일 서울 남산국악당서 공연




서울 강남구 한국문화의집에서 17일 ‘몌별 해어화’ 공연을 준비하는 연희단 팔산대. 김운태 연희단 팔산대 단장은 “영국 템스 축제와 일본 도쿄 공연 등 해외에서 자주 초청한다”며 “진정한 전통은 자기 나라에서 사랑받아야 하기에 국내 관객이 더 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동주 기자 zoo@donga.com

미리 준비한 천을 머리에 갖다대니 금세 꽃 한 송이를 닮은 머리띠가 생겨났다. 눈빛과 손짓을 몇 번 주고받더니 “얼쑤”라는 추임새와 함께 장단이 시작됐다. 소고와 꽹과리 장구 등을 둘러멘 단원들의 움직임이 시작되자 실내 공연장은 어느새 드넓은 야외마당처럼 신명으로 채워졌다. 호남 서부 평야지대인 전북 익산, 김제, 정읍, 고창 등지에서 전승되는 호남우도농악의 굿판이 펼쳐진 것. 그러더니 단원들 몇 명이 옷을 갈아입고 나타났다. 이제는 한 편의 신파극을 선보이며 뮤지컬 무대로 변신했다.

우리 시대 마지막 예기로 불리는 군산의 장금도, 부산의 유금선, 대구의 권명화 명인(왼쪽부터). 권 명인은 먼저 간 언니들을 기리는 추모공연을 20, 21일 펼친다. 한국문화재재단 제공

17일 오전 서울 강남구 한국문화의집 공연장에서 만난 연희단 팔산대의 모습은 종합예술 선물세트와도 같았다. 이들은 20, 21일 서울 중구 남산국악당 크라운해태홀에서 열리는 우리 시대 마지막 예기(藝妓)인 장금도(1928∼2019) 유금선 명인(1929∼2014)의 추모 공연 ‘몌별 해어화’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몌별(袂別)’은 ‘소매를 잡고 놓지 못하는 안타까운 이별’을 뜻하는 말이다.

김운태 연희단 팔산대 단장(56)은 “옛 권번(券番)처럼 우리 단원들도 춤과 노래, 무대에서 숨쉬는 방법까지 수년에 걸친 합숙 연습을 통해 갈고 닦고 있다”며 “권번에서 가무를 배운 마지막 예기인 장금도 유금선 명인에게 배운 전통 그대로 신명나는 판을 보여줄 예정”이라고 말했다.

가까운 과거라 오히려 역사에 기록되지 못하고 잊히는 경우가 있다. 근현대 예술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던 예기(예술인 기생)와 권번(예기 조합) 문화가 대표적이다. 예기는 술 따르는 기생을 일컫는 나무기생과 달리 수년간 음악, 춤, 예절 훈련을 통해 예술가 정신을 간직한 이들을 가리킨다. 채(회초리)를 맞으며 제대로 학습한 생짜(기생)라는 뜻에서 ‘채 맞은 생짜’라고도 불렀다.

전북 지역에서 큰 잔치를 벌일 때 “임방울 소리에 장금도 춤”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던 장금도 명인은 군산 소화권번 출신으로 민살풀이춤의 대가였다. 부산 동래권번에서 입적한 유금선 명인은 춤을 부르는 구음(口音)이 탁월해 부산시 무형문화재 제3호 ‘동래학춤’의 구음 보유자로 지정되기도 했다.

그러나 1950년대에 들어 전국 권번은 대부분 사라져 갔다. 예기의 전통 역시 명맥이 끊겼다. 그나마 1957년 전북 남원권번에서 만든 ‘호남여성농악단’이 1979년까지 유지됐다. 연희단 팔산대는 호남여성농악단장의 아들이자 막내 단원이던 김 단장이 2011년 전통의 부활을 선언하며 시작됐다. 농악단에서 활동하던 옛 단원뿐 아니라 서울 명문대에서 판소리, 무용, 기악 등을 전공한 청춘들까지 불러 모았다. 옛 권번처럼 경기 고양시에 숙소를 만들어 관객의 박수를 받기 위한 구슬땀을 함께 흘리고 있다.

장금도 유금선 두 명인은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이들의 스승을 자처했다. 김 단장은 “오히려 고향에서는 예기 출신이라는 점을 숨기느라 명인들의 춤과 노래가 제대로 전승되기 힘들었다”며 “두 분께서 늘 ‘젖어 있어라’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이제야 그 의미를 조금 알 것 같다”고 말했다.

이번 공연에서는 두 명인과 함께 마지막 예기 3인방으로 여겨지는 권명화 명인(85)의 소고춤 공연도 선보인다. ‘달구벌춤의 봉우리’로 불리는 권 명인은 대구의 대동권번 출신으로 대구시 무형문화재 제9호 살풀이춤 보유자다.

진옥섭 한국문화재재단 이사장은 “먼저 가신 두 분을 기리고, 홀로 남은 예기의 증인을 주목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공연을 준비했다”며 “올해 최고 맛있는 판이라고 감히 자부한다”고 말했다. 3만 원.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